9월 7일 결국 근처 삿포로 지진 대피소 입소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전기가 복구되 손으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랬지만 그런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젖 먹던 기운까지 모두 끄집어내 1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니 온몸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아… 샤워를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땀을 내면 어쩌냐고요.
더 이상 땀이 나면 곤란할 듯하여 오도리 고등학교(市立札幌大通高等学校) 대피소로 천천히 이동했다. 스스키노에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기에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천천히 걸은 탓에 대략 40분 가까이 걸려 겨우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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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관 인근 삿포로 지진 대피소 입소
지진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지금 입소하려는 거라면 그냥 삿포로 시내의 지진 대피소로 가라고 했다. 이곳은 임시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 없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운영을 중지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사실 이동이 훨씬 편리한 삿포로 역 근처 대피소를 봐 두었었다. 다만 영사관에 문의할 것이 있어 굳이 훨씬 먼 오도리 고등학교 대피소로 온 것이었다. 현지 운영자의 짧은 영어와 내 짧은 일어로 어렵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 즈음, 현지 교민 자원봉사자가 나타나시더니 모포와 먹을 것을 한 아름 안겨주고 자리를 잡아 주셨다. 다른 대피소로 갈 때 가더라도 우선은 들어오라 셨다. (감사합니다~ 자원봉사자님)
이곳은 놀랍게도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운명하신 터라 비어있는 콘센트에서 충전을 실시하고 잠시 쉬며 교민 자원봉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은 오늘 오전에 전기가 복구되었다고 했다. 어제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티웨이 항공에서 아사히카와 공항으로 임시 항공편을 보내줘서 영사관에서 마련해준 대절 버스를 타고 떠나 지금은 많이 비어있는 상태라 했다.
우와, 티웨이 엄청 부러운걸? 이곳에서 남아있던 분들은 아마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티웨이 항공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을 것이다. 우리 모녀의 대체 항공편이 언제로 잡혔냐 물어보시길래 진에어인데 예약 환불받으라는 문자만 오고 아직 감감무소식이라 했더니 짧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아, 역시 진에어가 계속 문제구나…
그래요? 그랬던 겁니까? 역시? 다른 항공사들에 비해 진에어 쪽의 대처가 확실히 느리게 진행 중인 듯했다. 사실 이 문제로 영사관에 가서 도움을 받아볼까 하여 여러 곳의 삿포로 지진 대피소를 놔두고 구지 제일 먼 거리의 오도리 고등학교 대피소로 온 것이기도 했다. 결항이 되었으면 날짜와 시간을 변경해 공지를 해줘야지, 나보고 한국 고객센터로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서 변경하거나 환불을 받으라니! 미친 거 아니야? 접속이 돼야 예약을 변경하건 환불을 하건 하지 않겠느냐고요.
진에어에 컴플레인을 넣다
잠시 충전을 시켜 생명이 되돌아온 핸드폰을 들고 길 건너 대한민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갔다. 내 순서가 돌아오자 진에어의 예약 변경 및 환불 관련 문자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야만 하는데 연결은 안 되고 통화 대기로 국제전화 비용만 어마어마하게 든 상태라고 컴플레인을 넣었다.
영사관 직원 아저씨가 말도 안 된다며 직접 신치토세 공항의 진에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진에어는 전화 통화 당시인 7일 오후 1시까지도 지진 관련 항공편 결항에 대한 그 어떤 대책 회의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누구는 벌써 대체 항공편 타러 아사히카와 공항까지 대절 버스로 이동하는데, 누구는 아직 논의도 안 했다? 대체 몇 시에 회의를 할 거냐 한참 따지시더니 회의가 완료되는 대로 바로 대처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전화를 끊으셨다. 수고해 주신 영사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도리 고등학교 임시 대피소에서 머무는 잠시 동안 계속해서 운영을 중단하고 근처 대피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계속 오갔다. 게다가 뭔 놈의 방송국에서 종류별로 와서 취재를 해 대는지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얼굴을 9시 뉴스에서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되도록 등을 돌리고 있으려 노력을 했는데 잠시만 방심하고 있으면 카메라가 내 방향으로 찍고 있긔 없긔!
삿포로 기타쿠조 초등학교 대피소로 이동
하아… 진에어 건 컴플레인도 넣었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보항편 연락을 받으면 바로 이동하기 편리한 삿포로 역 근처의 지진 대피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시 한참을 걷고 또 걸어 녹다운 일보 직전에 도착한 기타쿠조 초등학교는 암흑 세계였다. 이쪽은 아직 전기가 복구되기 전이었던 것이다. 순간 그냥 오도리 고등학교에 있을 걸 그랬나 싶었지만, 오늘 저녁까지 진에어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새벽 첫 기차로 공항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상태였기에 위치적으로 삿포로 역 바로 뒤편인 이곳 기타쿠조 초등학교 대피소가 여러모로 유리한 위치였다. 그 후회도 잠시 뿐, 오후 6시 반 즈음 드디어 전기가 복구되었다. 지진 대피소 내 커다란 환호성이 일었다. 네, 그래요, 전기는 소중한 것입니다. 흑흑…
현지 주민들의 친절을 경험하다
이곳은 해당 지역 삿포로 주민용 지진 대피소라 일부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 알고 지내는 동네 주민들이었다. 아무래도 외국인이었던 우리 존재가 눈에 띄었는지, 대피소 운영진들과 주변 주민들이 오가면서 우리 모녀를 살뜰히 보살펴 주셨다. 재난 구호 식량이 외부에서 도착할 때마다 많이 먹으라며 엄청난 양을 우리 모녀에게 안겨다 주셨다. 미역 밥은 1인 당 하나밖에 못 준다고 안타까워하시더니, 햄버거가 배급되자 10개를 건네주셨다. 헐… 10개? 좀 있으니 다른 분이 4~5개를 또 주고 가시고… 또 다른 분이 또 햄버거 먹을 거냐며 놓고 가셨다. 산 처럼 쌓인 햄버거 더미…. 햄버거는 모두 다시 배급 통으로 반납했다. (원래 저희 소식해요. 그만 주셔요.) 저녁이 되니 간식이라며 도라야키가 나왔다. 역시나 우리가 먹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며 한 50개를 우리 침낭 위로 투척하시더니 목마르냐며 생수를 너 댓 병 놓고 가시는 게 아닌가! 음식 폭탄이란 이런 것인가!!! 친철함의 표현을 음식으로 전달해 주셨음이리라.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날 저녁, 주민 여러분들의 과잉 음식 공급에 놀라워하고 있을 즈음 드디어 진에어 측의 보항편 공지를 문자로 받았다. 보항편이 준비가 되었단 사실에 한시름 놓긴 했지만, 날짜와 시간이 증발하고 앞/뒤 문자만 수신한 지라 대체 언제 보항편을 타라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아, 스트레스!
이 문제도 [북해도로 가자] 카페 운영자님이 직접 시간과 일시를 확인한 후 개별적으로 이메일까지 보내주셔서 알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9월 8일) 드디어 떠나는 삿포로
6일 결항부터 순서대로 떠나다 보니 7일 항공편이었던 우리 모녀의 보항편은 그야말로 야밤데스. 새벽부터 무더기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더니 낮 시간이 되니 기타쿠조 대피소에 남은 인원은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대피소 정리도 거의 다 끝나가는데 우리만 계속 대피소를 지키고 있자니 미안함이 너무 커서 자원봉사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삿포로 지진 대피소에 작별을 고했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수많은 여행자들의 노숙 흔적이 가득했다. 공항에서 먹을 것을 전혀 팔지 않는다는 정보를 카페에서 확인하고, 삿포로 역에서 미리 사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5~6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진에어 보항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감개무량…
(9월 9일) 고속터미널에서의 마지막 노숙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인천공항 도착했다. 이대로 험난한 일정이 마무리되는 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방에 사는 우리 모녀에게는 한 번의 노숙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시간이 야밤이라 항공사에서 대절 버스도 준비를 해 주었지만 수도권 노선이 전부였고 소수의 지방 주민은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것이었다. 평생 서울 주민으로 살다가 지방 주민이 되니 차별이 느껴진다. 이래서 다들 수도권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거겠지?
공항 노숙과 고속버스터미널 노숙 중 집에 대략 5시간 가까이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노숙을 선택하고 항공사 대절 버스로 고속터미널까지 이동했다. 야밤이라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는 초스피드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겨우 새벽 1시였고 첫 차까지 5시간 정도 노숙을 해야 했다.
그 이후… 한 달간 병자가 됨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와~ 천국이 따로 없다. 사실 삿포로 지진 대피소 생활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공항에서의 장기간 대기와 마지막 고속터미널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세웠던 부분이었다. 삿포로 지진 대피소에서는 먹을 거, 덮을 거 다 챙겨줬지만, 고속터미널에서의 노숙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야생 그 자체!
결국 삿포로 지진 대피소에서 장기간 먼지에 노출된 후유증과 소멸된 체력으로 인해 인후염이 시작됐고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기침을 한 달 내내 주야장천 했다. 기침 때문에 배 근육통까지 생겼지만, 뱃살은 왜 안 빠졌는지 의문스럽다. 결국 인후염은 중이염으로 번져 병원에 안 가고 나아보려던 노력은 이비인후과 항생제 복용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쉬러 갔다 병만 얻어 온 이번 삿포로 여행은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당분간 진에어도 안 탈 것 같지만, 삿포로도 잠시는 안 가고 싶을 것 같다.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경험하게 된 지진이었지만, 일본의 내진 설계는 그 명성대로 훌륭했고,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 또한 정말 본받고 싶을 정도로 우수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조용하고 침착했고 또 느긋했다. 삿포로 지진 대피소에서 경험한 한/일 자원봉사자님들의 엄청난 친절과 봉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가장 빠른 정보 제공을 위해 노력해주신 [북해도로 가자]와 [네일동] 카페 운영진들과 회원님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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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훠 이런, 백 년만에 와 보니 넘의 얘기라 무척 재미지구나.
공항 옆에 하숙집을 마련하였다. ㅎㅎ
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울 집에서 묵어가면 되긋다!!
앞으로 이런 일 생기지 않기 바라지만, 공항 옆 하숙집하는 친구 있으니 좋긴 좋구나! 새벽 뱅기 타거나 할 때 이용하면 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