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6 @ 롤루오스 유적 프레아 코 사원의 6개의 전탑

시엠레아프(Siem Reap, 씨엠립) 다운타운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롤루오스(Roluos) 지역은 앙코르 왕조 초기의 거점 지역이다. 이 지역에 위치한 프레아 코(Preah Ko)와 바콩(Bakong), 롤레이(Lolei) 사원은 영문으로는 Roluos Group Temples,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롤루오스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9세기 후반에 건설된 롤루오스 유적은 600년의 앙코르 시대 유적 중 가장 초기의 것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9세기 후반의 한반도는 통일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가 끝나면서 후백제(892년)가 들어서는 시기라고 보면 되겠다.

롤루오스 유적 – 앙코르 초기 시대

방대한 앙코르 유적 관람의 가장 첫 코스로 롤루오스 유적을 추천하고 싶다. 건축 양식 및 예술성이란 본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 완성도가 높아진다. 후대 시기의 유적을 먼저 보게 된다면 그 건축물의 완성도와 정교하고 화려한 예술성에 눈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초기 시대의 유적은 당연히 흥미와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초기 시대의 건축 양식과 예술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프레아 코(Preah Ko): 앙코르 유적의 최초 사원

프레아 코는 879년 인드라바르만 1세 (Indravarman I)에 의해 축조된 조상을 기리는 사당으로, 벽돌로 쌓아올린 여섯 개의 전탑(塼塔, Prasat)이 세 개씩 두 줄로 사암(sandstone) 기단에 동쪽을 향해 배치된 구조이다. 앞 줄의 세 전탑들은 선대왕들에게, 그리고 뒤 줄의 세 탑들은 그들의 왕비에게 봉헌했다고 한다. 앞 줄의 세 전탑 앞에 소의 석상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는데, 사원의 이름인 ‘프레아 코 (신성한 소)’가 바로 이 석상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콩(Bakong) 사원: 앙코르 유적의 최초 Temple Mountain

캄보디아 바콩 사원
2012-12-26 @ 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5층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의 바콩 사원

바콩 사원은 프레아 코와 마찬가지로 인드라바르만 1세가 881년에 축조한 앙코르 시대 최초의 공식적인 국가 사원이자 계단식 피라미드의 형태를 취한 최초의 앙코르 시대 건축물이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 형식의 사원은 temple mountain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temple mountain은 그 뿌리가 같은 힌두교, 자인교, 불교의 공통적인 세계관인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는 5개의 봉우리를 가진 상상의 산인 수미산 (Mount Meru, 須彌山)을 나타낸다고 한다. 힌두교나 자인교, 불교 건축물에서 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5층 구조를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도 오층 석탑을 자주 볼 수 있지요.)

바콩 사원의 5층 꼭대기에 위치한 중앙 성소까지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그늘이 전혀 없는 땡볕이라 캄보디아의 무더운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temple mountain이라는 명칭처럼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산에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식적인 국가 사원이라는 바콩 사원의 지위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고 한다. 바콩 사원을 건설한 인드라바르만 1세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야소바르만 1세가 앙코르 왕조의 수도를 롤루오스 (과거명으로 하리하랄라야, Hariharalaya)에서 앙코르 (과거명으로 야소드하라푸라, Yasodharapura)로 옮겼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국가 사원의 지위는 바콩 사원에서 앙코르 지역에 위치한 프놈 바켕(Phnom Bakheng) 사원으로 이전되었다.

프놈 바켕 사원은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다. 특히 일몰 시간 대에 맞춰 방문하면 앙코르 유적 중에 가장 유명한 앙코르 왓(Angkor Wat)을 배경으로 저녁노을이 지는 드라마틱한 풍경을 볼 수 있어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롤레이(Lolei) 사원: 롤루오스 유적의 막내

2012-12-26 @ 롤루오스 롤레이 사원의 심하게 손상된 전탑

롤루오스 유적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건설된 롤레이 사원은 인드라바르만 1세의 뒤를 이은 야소바르만 1세가 선대 조상을 기리기 위해 893년에 건설하여 시바(Shiva) 신에게 봉납하였다. 총 4개의 전탑이 한 줄에 두 개씩 총 두 줄로 하나의 기단 위에 조성된 형태이다. 네 개의 탑은 각기 그의 조부모와 선대왕 부부인 부모를 위한 것으로 앞 줄에는 남성 뒤 줄에는 여성으로 프레아 코와 비교하여 전탑의 수가 6개에서 4개로 줄었을 뿐, 기본적인 구성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롤루오스 유적 중에서 분명 가장 늦게 건설되었지만 보존 상태는 제일 좋지 않았다. 거의 폐허 같은 분위기에서 보수를 진행 중이었는데, 보수가 제대로 진행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문화유산인데 그냥 막 고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무너져 내린 전탑 위로 잡초까지 무성하게 자란 상태였다. 훌륭한 문화재가 손상되는 것을 보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모든 의욕을 앗아간 더위

앙코르 시대 초기인 롤루오스 유적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프놈 바켕에서 일몰을 본 후 Pub Street에서 식사와 압사라(APSARA) 크메르 전통 춤 공연을 볼 예정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더위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 모녀는 프놈 바켕 일정을 포기했다.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저녁 밥 시간이 돼서야 겨우 잠에서 깼기 때문이다. (프놈 바켕, 넌 우리랑 인연이 아닌가 보다. 석양이고 나발이고 너무 더우니 다 귀찮아!) 더워서 사진도 제대로 찍은 게 없다.


시엠레아프 Pub Street에서의 저녁 식사와 압사라(APSARA) 춤 공연

더위에 식욕도 날아갔지만, 그래도 조금은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Pub Street으로 향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인 소마데비 앙코르 스파&리조트 (Somadevi Angkor Spa & Resort)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지만, 사실 첫날에는 20분도 한참을 넘겨 겨우 도착했다.

시엠레아프 거리에서는 무단 횡단의 기술이 없으면 좌우로 고개만 돌리다 영영 제자리에서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하게 몰아닥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적절히 무시하고 막 건너면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알아서 피해 가는데, 사실 이런 것에 익숙지 않으면 그 적절한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다. 고작 몇 블록의 길을 걸어오며 오토바이 부대와 자동차들과 엄청난 눈치싸움을 해댔더니 그나마 남아있는 에너지마저 소멸됐다.

2012-12-26 @ 시엠레아프 Pub Street의 압사라(APSARA) 크메르 전통 춤 공연

압사라 춤 공연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여럿 있다는 걸 알아보고 갔으나, 그중에 고를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제일 먼저 발견한 곳으로 그냥 들어갔다. 앞 쪽에 앉을 수는 있었지만 큰 기둥 옆이라 어떻게 찍어도 기둥에 가려지는 아름다운 각도의 자리였다. 결국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쓸만한 사진을 건지지는 못했다. (지나친 피로는 여행에 해롭습니다.)

English Wikipedia에 따르면 압사라는 힌두교와 불교문화에서 구름과 물의 정령으로 여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압사라는 젊고 우아하며 춤의 예술에 뛰어나 신들의 궁전에서 남성의 신들과 인간들을 유혹하는 춤을 춘다고 설명하고 있다. (거참 매우 맘에 안 드는 설명이로세! 춤의 예술에 뛰어나 춤을 추는 것이지 유혹하려고 춤을 추는 것입니꽈?)

실제 압사라 춤은 한 번쯤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앙코르 유적의 벽면을 아름답게 수놓은 저부조(bas-relief) 중의 많은 부분이 이 압사라 춤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춤 동작을 보면 압사라 춤이 얼마나 정확하게 저부조로 묘사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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