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지금 번역을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전업 번역사로. 이름하야 프리랜서 번역사. 정확히 말하면 3.3%를 떼는 사업자라서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이다. 사실 난 번역을 할 마음이 1도 없었다. 지난 4월 중순에 퇴사를 하고 사업 아이템을 개발 중이었는데… 분명 사업 준비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프리랜서 번역사로 등극하다니…
이 글의 목차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한 2주 푹 쉬었다. 난 한국 회사가 체질에 안 맞는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결국 몸이 너무 안 좋아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누적된 스트레스로 거의 좀비 수준의 몸을 감당할 길이 없어 퇴사를 했다. 포항에서 서울로 복귀한 후 이번엔 오래 회사에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은 퇴사로 마무리했다.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니 슬슬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때!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회사 체질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업 아이템 준비를 위해 외출 중인데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다. 원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데, 내 팔자가 번역사가 될 팔자였나? 그 전화를 왜 받았을까? 전화 내용은 정말 난데없이 자기 회사 시스템에 프리랜서 번역사로 온라인에 등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니, 댁이 누구신데요?
내 연락처를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의심스러웠다.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느냐, 누구에게서 받았느냐, 전화로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정말 길바닥에서 1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인 결과, 내 개인정보 유출의 출처는 알아낼 수 있었다. 범인은 퇴사한 회사의 거래처 사장님. 회사 거래처다 보니 내가 퇴사한 사실을 알고 본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번역회사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꽂아 넣은 듯. 하아…
결국은 프리랜서 번역사로 등록 완료
난 꾀임에 넘어갔다. 사업 아이템 준비하면서 계속 수입이 없으면 부담되니까, 번역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더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다나?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난 항상 회사가 꼴보기 싫어 사직서를 던지는 인간이라 실업급여 대상자가 아니다. 당연히 수입이 없는 기간이 늘어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사 시스템에 프리랜서 번역사로 등록하고, 정말 조금씩만 번역일을 하기로 했다.

초반에는 약속한 대로 큰 무리 없이 번역 작업과 사업 준비를 병행할 수 있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때부터 번역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번역에 찌들어 가기 시작했다.
장렬하게 실패한 번역사 탈출 시도
두 달 정도 아무것도 못 하고 번역만 하던 중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다. 대기업 외주 프로젝트로 6개월 단기 웹 기획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 자연스럽게 번역을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덜컥 계약을 하고 번역회사에 통보했다.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이제 번역을 못 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아, 그렇군요. 안타깝게 되었네요. 사업 준비도 하셔야 하니 인연은 여기까지가 되겠네요… 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절대 아니었고, 월~금은 프로젝트를 위해 출근, 토~일은 번역을 하게 되었다. 정말 극도로 피곤한 삶이었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피로에 찌든 상태다. 번역을 못 하겠다고 해도 세상에나 마상에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2개월 만에 종료되고 말았다. 팀 관리자가 미친놈이었다. 학력과 경력을 모두 속이고 들어온 사기꾼이었다! 그 팀에 소속되었던 나를 포함한 3명의 기획자들은 본사에서 내려온 프로젝트 지침을 팀 관리자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계속 뻘짓만 했고, 결국 팀원 전원이 본사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계약 해지 요구했다.
이 엄청난 사태에 본사 담당자까지 출동해 우리 팀과 개별 면담을 진행한 뒤, 우리 팀 관리자는 결국 해촉되었다. 팀원들을 다른 팀으로 이관해 주겠다고 했지만, 두 달간 너무 시달린 우리는 모두가 병자인 상태였기에 모두 휴식을 원했고, 그렇게 프로젝트 참여는 조기 종료되었다.

번역사를 탈출하려고 단기 프로젝트에 합류했다가 결국 영광의 상처만 남았다. 야밤까지 계속 이어지던 야근, 팀 관리자로 인한 스트레스로 피곤이 극에 달해 정신을 놓고 다니다 퇴근길에 계단에서 구르면서 발목을 접질렀고, 반깁스 상태로 1주일 넘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계속했다. 하아… 정말 너무 지치는 경험이었다. 보라색으로 변한 발은 여전히 제 색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회복되겠지?
돌고 돌아 결국 프리랜서 번역사
결국은 다시 프리랜서 번역사 모드다. 프로젝트를 중단하자마자 번역을 해야 해서 씁쓸했다. 그래도 평일 회사, 주말 번역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 편하니 불평하지 말아야지…
급여를 계속 받다 보면 사업하려던 의지가 점점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특히 진행하던 아이템을 개발자를 구해 앱으로 할 것인지, 자체 해결이 가능한 웹진 형태로 갈 것인지 의견이 계속 갈려 진행이 더디다. 아무래도 개발자를 구하면 초기 자금이 많이 들어가니 부담이 크다. 고민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번역에 계속 집중하게 된다. 이러다 나 정말 평생 번역하는 것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