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TV에 등장하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4월 한 달 간은 강의 일정이 오전 11시면 모두 끝나나 보니 수업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면 당일치기로 이곳저곳으로 나들이를 다니곤 한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찾다 가끔씩 TV에 등장하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떠올라 이 기회에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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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통근열차로 시작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여행
서울역에서 경의선 통근열차를 타고 임진강역에서 내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기에 오전 강의를 끝내고 마마님과 서울역에서 만났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았는데 소요시간은 무려 1시간 20분이란다. 난생처음 타 보는 무궁화 통근열차인지라 왠지 모를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정작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아주 스펙터클하게 개짜증 나는 어이 상실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웬 무개념 할머니의 좌석 갈취 “
지정된 좌석에 앉아 마마님이 준비해 오신 삶은 달걀을 까먹을 생각을 하며 출발시간을 기다리는데, 웬 할머님이 오시더니 다짜고짜 내게 자리를 비워 달란다.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니 아예 대놓고 짜증을 내며 자기는 입석표를 샀는데 다리가 아프니 돈 주고 지정석 산 나한테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자긴 곧 내리니까 자기가 앉아서 가고 자기가 내리면 그때 앉아서 가라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 부탁이 아니고, 애들 삥 뜯는 것 같은 상황이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성질 죽이고 활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엄훠~ 그러쎄요? 저는 더 금방 내릴 예정이니까 저 내리면 그때 여기 앉으시면 되시겠어요. 오호호호~~
같은 칸 열차에 탑승한 모든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지만 이 할머니는 이미 철판을 까셨는가 보다. 막 화를 내신다. 마치 내가 그 할머니 좌석을 뺏기나 한 것 같은 너낌! 남의 좌석을 뺏으려는 양반이 화를 내고 있다.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 정신일까? 뭐라고 지껄여도 개무시를 시전했더니 팩 돌아서서는 성큼성큼 내 뒷뒷뒷 칸에 앉아있던 불쌍한 대학생 남자애 쪽으로 돌진하더라. 느낌이 쎄~ 했다. 아무래도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저 젊은 청년은 자리를 뺏길 것 같았다.
역시나 강짜를 부려 결국 자리를 갈취하는데 성공했다. OH MY GOD, 할머니! 지랄도 적당히 하세요! 이런 거 경찰에 너무 신고하고 싶다!!! 정상적인 뇌 구조라면, 그리고 진짜 순수하게 다리가 아파서 그러신 거라면 입석표와 지정석의 금액 차이만큼 보상하겠다며 부드러운 말투로 부탁이라는 걸 해야지 무작정 소리 지르고 보자 이건가?
그 열차 칸에서 그 남학생과 내가 딱 봐도 제일 어려 보인 게 잘못인 정말 더러운 세상이다. 그나마 난 30대, 그 아인 20대인지라 몇 년 더 살았다고 난 돈 주고 산 내 자리를 지켰고 그 아인 뺏겼다. 요즘 어르신들은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어르신들이 아니다. 그 사이 한국에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걸까?
햇볕 쨍쨍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좌석 갈취 사건에 기분은 왕창 잡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출발했고, 반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무궁화호 진짜 진~짜 천천히 간다. 무자비하게 돌아가던 에어컨 때문에 오들오들 떨며 추운 것 참느라 힘들었는데 또 막상 기차에서 내리니 밖은 땡볕 그 자체다.
임진강역 역사를 나와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 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는 [카페 안녕]이 보였고, 그 뒤쪽으로 확 트인 공간에 색색의 바람개비로 가득한 [바람의 언덕]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바로 그 풍경이다. 이 날에야 알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람개비들이 지도 모양으로 꽂혀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빛이 여기저기로 산란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는 눈을 뜨고 있기도 힘이 들었던지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이나 할까 싶었지만 [생명 촛불 파빌리온] 건물은 오늘이 휴일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 맞는가 보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한쪽으로 전시되어있는 [달리고 싶은 철마]는 여전히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부산진에서 신의주까지 실제로 운행되던 경의선 열차라는데 가까이서 보니 너무 아쉽기도 하고 복잡 다양한 기분이었다. 내 평생 통일이 되기는 할까 궁금해진다. 오늘 탄 통근열차 속도를 생각해보면 부산진부터 신의주까지 하루엔 못 갔을 듯하다.
평화누리공원의 크기는 진짜 매우 매우 크고 넓은데 DMZ 투어를 할 것 아니면 딱히 뭔가 할 것은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되돌아 나오면서 [경기평화센터]라는 곳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한 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소망 메시지 보드]다. 색색깔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모양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적혀있는 모든 소망이 다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임진강역 주변의 이정표를 보니 서울과 평양 사이의 거리가 불과 209km였다. 난 평양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데 왜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일까? 차로는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갈 수는 없는 곳, 그리고 임진강 너머 땅이 북한이라는 사실도 그저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하루였다.
그리고… 발등에 새겨진 무늬! 무늬! 무늬!
집에 돌아와서 보니 발등에 줄무늬가 생겨버렸다. 발등에 두 줄짜리 끈이 달린 신발이었는데 오늘 햇볕이 너무 강렬하더니 이렇게 발등에 무늬를 새겨놓았다. 신발 바꿔신으면 너무나 추잡스럽게 드러나는 이 줄무늬를 대체 어쩌란 말이냐. 선블록 바를걸… 뒤늦은 후회가 마구마구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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