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평화누리공원 – 경의선 타고 서울 근교 여행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080418 @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

가끔씩 TV에 등장하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4월 한 달간은 강의 일정이 오전 11시면 모두 끝나다 보니 수업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면 당일치기로 이곳저곳을 나들이 다니곤 한다. 마침 계절도 돌아다니기 딱 좋은 4월! 며칠 전에는 남산에서 봄꽃 구경도 실컷 해 봤으니, 이번에는 아직 가 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가 보기로 했다. 어딜 가야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TV에 나오길래 직접 방문해 보기로 결정!

경의선 통근열차로 시작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여행

서울역에서 경의선 통근열차를 타고 임진강역에서 내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기에 오전 강의를 끝내고 마마님과 서울역에서 만났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았는데 소요 시간은 무려 1시간 20분이란다. 난생처음 타 보는 무궁화 통근열차인지라 왠지 모를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정작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아주 스펙터클하게 개짜증 나는 어이 상실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웬 무개념 할머니의 좌석 갈취 “

지정된 좌석에 앉아 마마님이 준비해 오신 삶은 달걀을 까먹을 생각을 하며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웬 할머님이 오시더니 다짜고짜 내게 자리를 비워 달란다.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니 아예 대놓고 짜증을 내며 자기는 입석표를 샀는데 다리가 아프니 돈 주고 지정석을 산 나한테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자긴 곧 내리니까 자기가 앉아서 가고 자기가 내리면 그때 앉아서 가라며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 부탁이 아니고, 애들 삥 뜯는 것 같은 상황이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성질을 죽이고 활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엄훠~ 그러쎄요?

저는 더 금방 내릴 예정이니까

저 내리면 그때 여기 앉으시면 되시겠네요.

같은 칸 열차에 탑승한 모든 승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지만 이 할머니는 이미 철판을 까셨는가 보다. 막 화를 내신다. 마치 내가 그 할머니의 좌석을 빼앗은 너낌! 남의 좌석을 빼앗으려는 양반이 화를 내고 있다.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정신일까? 뭐라고 지껄여도 개무시를 시전했더니 팩 돌아서서는 성큼성큼 내 뒷뒷뒷칸에 앉아 있던 불쌍한 대학생 남자애 쪽으로 돌진하더라. 느낌이 쎄~ 했다. 아무래도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저 젊은 청년은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았다.

역시나 강짜를 부려 결국 자리를 갈취하는 데 성공했다. OH MY GOD, 할머니! 지랄도 적당히 하세요! 이런 거 경찰에 너무 신고하고 싶다!!! 정상적인 뇌 구조라면, 그리고 진짜 순수하게 다리가 아파서 그러신 거라면 입석표와 지정석의 금액 차이만큼 보상하겠다며 부드러운 말투로 부탁이라는 걸 해야지 무작정 소리 지르고 보자 이건가?

그 열차 칸에서 그 남학생과 내가 딱 봐도 제일 어려 보인 게 잘못인 정말 더러운 세상이다. 그나마 난 30대, 그 아인 20대인지라 몇 년 더 살았다고 난 돈 주고 산 내 자리를 지켰고 그 아인 뺏겼다. 요즘 어르신들은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어르신들이 아니다. 그 사이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햇볕 쨍쨍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좌석 갈취 사건으로 기분은 왕창 잡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출발했고, 반쯤 졸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임진강역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무궁화호 진짜 진~짜 천천히 간다. 무자비하게 돌아가던 에어컨 때문에 오들오들 떨며 추운 것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또 막상 기차에서 내리니 밖은 땡볕 그 자체다.

평화누리공원 생명 촛불 파빌리온
20080418 @ 평화누리공원 생명 촛불 파빌리온

임진강역 역사를 나와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 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는 [카페 안녕]이 보였고, 그 뒤쪽으로 확 트인 공간에 색색의 바람개비로 가득한 [바람의 언덕]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바로 그 풍경이다. 이날에야 알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람개비들이 지도 모양으로 꽂혀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빛이 여기저기로 산란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는 눈을 뜨고 있기도 힘이 들었던지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이나 할까 싶었지만 [생명 촛불 파빌리온] 건물은 오늘이 휴일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 맞는가 보다.

평화누리공원 달리고 싶은 철마
20080418 @ 평화누리공원 달리고 싶은 철마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한쪽으로 전시되어 있는 [달리고 싶은 철마]는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부산진에서 신의주까지 실제로 운행되던 경의선 열차라는데 가까이서 보니 너무 아쉽기도 하고 복잡다양한 기분이었다. 내 평생 통일이 되기는 할까 궁금해진다. 오늘 탄 통근열차 속도를 생각해 보면 부산진부터 신의주까지 하루엔 못 갔을 듯하다.

평화누리공원 소망 메시지 보드
20080418 @ 평화누리공원 소망 메시지 보드

평화누리공원의 크기는 진짜 매우 매우 크고 넓은데, DMZ 투어를 할 것 아니면 딱히 뭔가를 할 게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되돌아 나오면서 [경기평화센터]라는 곳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소망 메시지 보드]다. 색색깔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모양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적혀 있는 모든 소망이 다 이뤄지길 바란다.

임진강역 주변의 이정표를 보니 서울과 평양 사이의 거리가 불과 209km였다. 난 평양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데 왜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일까? 차로는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갈 수는 없는 곳, 그리고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땅이 북한이라는 사실도 그저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하루였다.

그리고… 발등에 새겨진 무늬! 무늬! 무늬!

집에 돌아와서 보니 발등에 줄무늬가 생겨 버렸다. 발등에 두 줄짜리 끈이 달린 신발이었는데 오늘 햇볕이 너무 강렬하더니 이렇게 발등에 무늬를 새겨 놓았다. 신발을 바꿔 신으면 너무나 추잡스럽게 드러나는 이 줄무늬를 대체 어쩌란 말이냐. 선블록 바를 걸… 뒤늦은 후회가 마구마구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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