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본 간사이 여행 Day 4일차. 그간 누적된 피로로 인해 나라현 여행은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다녀왔다. 우선 이번 여행의 must-visit-place-list의 최상단에 자리한 이카루가(斑鳩) 정(町) 호류지를 방문한 후 나라현(奈良県)으로 이동해 시간에 맞춰 두어 군데를 방문하기로 하고, 상세한 볼거리는 현지의 Tourist Information Center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첫 목적지인 호류지는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이 글의 목차
오사카에서 호류지 가는 법
JR 신이마미야역 > JR 호류지역 > 버스 72번 (4개 정류장) > 종점 호류지산도(法隆寺参道)에서 하차
나라현 여행은 JR 패스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하루카와는 달리 텐노지역이 아닌 신이마미야역에서도 탑승이 가능해서 텐노지(天王寺)역보다 신이마미야(新今宮)역이 훨씬 가까운 호텔 라이잔(Hotel Raizan)에서 이동하기 편했다. JR 쾌속 열차로 호류지역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다. 9시 즈음에 열차에 탑승했고 호류지역에 내리니 9시 반이 되기 전이었다.
이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호류지에 방문하기 때문에 그냥 그들을 따라가도 되고, 여기저기 호류지 방면 안내 사인이 붙어있으니 그 사인을 보면서 버스 승강장까지 잘 따라 나오면 된다. 버스 승강장은 남쪽 출구(南口)에 있으며,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컨디션에 맞춰 버스를 타거나 걸어가는 걸 선택하면 된다. 나는 무조건 버스를 탈 계획이기도 했지만 버스 승강장에 도착한 직후 버스가 도착했기 때문에 고민할 새 없이 버스를 타고 호류지산도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JR패스 소지자라도 별도로 버스 요금(180엔)을 내야 한다.
나는 다리 컨디션 때문에 무조건 버스를 탈 계획이었지만, 버스 배차 시간이 1시간에 2~3대 정도이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그냥 걷는 게 나을 수 있다. 걸어서 간다면 북쪽 출구(北口)로 나가야 한다. 호류지역에서 걸어가면 25분 이내에 도착한다. 버스 대기 시간이 20분을 넘길 수도 있기에 버스를 탈 계획이라면 미리 시간을 확인하고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
아스카 시대의 걸작 호류지(法隆寺) ★★★★★
- 주소: 1-1 Horyuji Sannai, Ikaruga-cho, Ikoma-kun, Nara
- 관람시간: 8:00 ~ 17:00
- 입장료: 1,000엔
한반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학창 시절 학교에서 자세히 다루는 호류지! 시험 문제에 꼭 출제되는 고구려 출신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가 있는 바로 그곳! 호류지(법륭사)는 나라현 이카루가 정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서원가람으로 유명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이다. 역사 시간에 수차례 등장하는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607년에 창건한 사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의 건축물로 이 시대는 백제 출신이나 고구려 출신의 장인이 건축에 참여하는 등 도래인(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시기였다. 하여 과거 한반도의 문화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에게 뜻깊은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6세기 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7세기 전반의 아스카 시대에 일본 최초로 불교문화가 시작되었다. 예전엔 일본에 존재하지 않던 불교문화이니, 새로운 불교 사찰의 건축에는 당연히 불교와 친숙한 도래인의 입김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매표소는 호류지 중문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이인가란(西院伽藍)과 다이혼조인(大宝蔵院), 토인가란(東院伽藍) 세 곳을 묶은 한 장짜리 1,000엔 입장권을 구매하는데 해당 장소에 방문할 때 직원이 해당 부분에 아주 미세하게 펀칭을 한다. 그 말은 해당 장소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다시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
호류지 사이인가란(서원가람)
니조조처럼 호류지도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 상당히 많았다. 역시 입장료가 비싼 순서대로 볼 것이 많고, 볼 것이 많은 순서대로 사진 촬영을 금지한 곳이 많다! 호류지산나이 관람은 중문을 통과해 서원가람을 본 후 동쪽으로 이동하며 대보장원을 보고 동원가람으로 이동하는 게 보편적이다.
서원가람의 핵심은 1300년 된 호류지 5층탑과 금당(좌)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지만 그래도 1000년은 넘었다는 대강당(우)이다. 서원은 1탑 1금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백제식 가람과는 다르다. 호류지는 탑과 금당이 동서로 배치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백제식은 정문에서 바라볼 때 탑과 금당이 일렬(남북)로 배치되어 있다(예: 부여 정림사지). 가람의 배치는 다르나 금당 건물의 경우 백제의 목조 건축 양식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강당은 670년 이후에 재건되었던 적이 있고 그 후 벼락으로 인해 990년에 재차 재건한 건물이라 5층탑과 금당과 비해 역사가 300년가량 짧을 뿐 여전히 1000년은 넘은 건물이다. 이 포스팅 최상단의 호류지 중문은 7세기 건물이며 양쪽 금강역사상은 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호류지 내 대다수 건축물이 다 1000년은 넘긴 것이라는 말이다. (후덜덜…)
호류지 다이혼조인(대보장원)
서원가람을 나와서 동북쪽으로 이동하면 호류지의 보물 전시관인 다이혼조인(대보장원)이 있다. 호류지는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벌써 1000년이 넘은 것들이 수두룩 박적이니 당연히 보물이 많을 것이다. 그중 대부분이 대보장원에 보관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상당하다. 다만 실내 전시관이고 플래시로 인한 손상의 위험 때문에 사진은 전! 혀! 찍을 수 없으니 역시 눈으로만 보고 뇌세포에 고이 기억해야만 한다.
정말 아쉬운 점은 난 호류지를 가면 금당벽화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지!!! 근데 못 본다. 네, 못 봐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문화재입니다. 당연히 관광객 따위가 볼 수 있을 리 없다!!! 문화재청 직원이나 저명한 역사 학자 정도는 되어야 볼 수 있을 듯…
하아, 대/실/망
호류지 토인가란(동원가람)
동대문을 통과해 마지막 코스인 동원가람으로 이동하면 팔각형의 유메노도(夢殿)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한국에는 잘 없는 형태다 보니 뭔가 낯설다. 당나라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원가람에는 특이한 모양의 종루도 있다. 서원가람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라면 동원가람은 낯선 느낌이 강했다.
이곳도 교토 못지않게 수학여행 온 단체 관광객이 많아 그들과 동선이 겹치면 관람이 어려웠다. 학생 그룹이 오기 전에 바쁘게 동원가람으로 먼저 들어왔는데, 그것도 잠시… 좀 있으니 학생들이 물밀듯 밀려와 호류지 일정은 이만 종료하기로 했다. 시간도 어느덧 11시 반이 되었기에 더 늦기 전에 점심을 먹고 나라(奈良) 시내로 이동하기로 했다.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서 시작하는 나라 여행
JR 호류지역에서 JR 나라역까지는 JR 쾌속열차로 단 세 정거장 거리! 대략 1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역에서 내려 산조 도리를 따라 직진해 10분 정도 걸으면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 도착한다. 킨테츠 나라역 근처다. 이곳 직원분이 한국어를 잘 하신다! 한국 드라마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시라고~ 덕분에 알찬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나라현 여행 명소인 도다이지(東大寺)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리니 다이부츠덴(大佛殿) 방문 후 옆 언덕에 있는 니가츠도(二月堂) 풍경이 좋다고 강력 추천해 주셨다. 원래는 가스가타이샤 신사를 방문하려고 생각했으나 직원분 말씀이 저녁에 보름달이 떠서 사루사와 연못(猿沢池)에서 축제를 한다고 꼭 보고 가라고 하셨다. (10월 6일은 추석 당일이었기에 보름달이 뜨는 밤이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음력을 완전히 폐지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완전히 음력 명절을 없애버리진 못했나 보다. 지역 축제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Tourist Information Center 직원분의 추천으로 최종 확정된 나라현 여행의 나라 시내 동선은 다음과 같다.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서 계속 산조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저녁에 시작될 축제 준비가 한창인 사루사와 연못에 도착한다. 도로 건너편으로는 돌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오르면 바로 고후쿠지다. 고후쿠지는 도다이지를 가는 길에 필수불가결하게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둘러보았다.
고후쿠지(興福寺) ★★☆☆☆
- 주소: 48 Noborioji-cho, Nara
- 관람시간: 9:00 ~ 17:00
- 입장료: 공사 중 (들어가 볼 수 없음)
우선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사찰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했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사찰 건물들과 탑이 있고 각 건물 주변으로 낮은 담장을 둘러 놓았다. 아마도 경관 관리를 위해 작업 중인 것 같았다. 모든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좀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을 듯^^
일본의 아스카(飛鳥) 시대를 대표하는 가문이 소가씨(蘇我氏)였다면 나라(奈良) 시대를 대표하는 가문은 바로 후지와라씨(藤原氏)! 669년 후지와라 가마타리가 아내의 병환 회복을 기원하며 세운 절이라고 한다. 원래 위치는 교토였으나 672년에 후지와라쿄(藤原京)로 이전한 후 710년에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사를 참 자주 다닌 사찰이구나!
고후쿠지는 금당이 3개나 되는데 위 사진 속 동금당(東金堂, 도가네도)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50.1m의 높이를 자랑하는 5층탑은 730년에 처음 건립된 후 소실 등으로 여러 차례 재건하였고 현재의 탑은 1426년경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 우측 하단으로 보이는 사람의 크기와 비교하면 얼마나 큰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5층탑이다! 현재로는 지나가는 길에 잠시 사진만 찍는 정도로 관람이 가능하다.
나라코엔(奈良公園) ★★☆☆☆
- 주소: 469 Zoshi-cho, Nara
- 관람시간: N/A
- 입장료: 무료
고후쿠지에서 도다이지 가는 길에 보이는 드넓은 공원이 바로 나라공원이다. 사슴이 많다는 말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많았다. 너무 많아서 무서울 지경… 사람들이 주변 상점에서 사슴 먹이(?)를 사서 나눠줘서 그런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었다. 제발 경계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매우 저돌적으로 눈만 마주치면 돌진해 온다…
도다이지(東大寺) ★★★☆☆
- 주소: 406-1 Zoushi-cho, Nara
- 관람시간: 7:30 ~ 17:30 (동절기 8:00 ~ 17:00)
- 입장료: 500엔
도다이지 중문을 지나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이부츠덴(대불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이다. 두둥~ 도다이지는 733년에 창건된 긴쇼지(金鐘寺)를 기원으로 하며 785년에 다이부츠덴을 건설했다. 그 후 소실 등으로 인해 재건되었지만 최초의 다이부츠덴과 그 안에 모신 청동대불은 한반도의 도래인들(백제인을 주축으로 신라인과 고구려인들까지 함께 뜻을 모아)이 건설했다고 한다. 이때가 통일신라와 당나라의 시대인지라, 도다이지의 1금당 2탑 양식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현재 2개의 거대 목탑은 소실된 상태로 금당만 남아있게 되었단다.
제3차 재건의 결과물인 현재의 다이부츠덴은 과거보다 크기가 줄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통은 더 크게 더 좋게 재건하지 않나? 아니면 한반도 도래인의 기술력이었던 최초 버전을 따라 할 능력이 안 돼서 크기가 줄었을 수도…
도다이지 니가츠도(二月堂) ★★★★☆
- 주소: 406-1 Zoshi-cho Todaiji Temple, Nara
- 관람시간: 24시간
- 입장료: 없음
도다이지 중문을 나와 연못을 끼고 꺾어져 길을 따라 걸으면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 언덕을 오르면 여러 신사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 이 신사들을 지나 계속 나아가면 본격적인 돌계단과 석등, 비석 등이 보인다. 도다이지의 부속 건물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도착한 것이다. 한창 무더운 시간인 오후 3시경이라 몹시 더웠다. 게다가 아침에만 해도 흐리던 하늘이 어느덧 파란 하늘을 드러내 볕이 뜨겁기까지 했다. 안내 센터에서 이곳을 추천했으니 분명 이유가 있겠지… 더위를 참아가며 계단을 올랐다.
이미 힘든데 계단 앞 석등에 二月堂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라는 표식이다. 계단 옆 건물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목적지가 코앞이다. 꾸~욱 참고 마지막 힘을 내었다.
니가츠도의 풍경은 정말 멋졌다. 걸어 올라올 땐 싫었던 맑은 하늘의 강렬한 햇빛이 니가츠도에서는 멋진 풍경을 더욱 멋지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나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날씨 좋은 날 쉬어 가기 정말 좋은 장소였다.
안내소 직원분, 이곳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속 아주머니들이 욘사마와 지우히메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화 중이었는데, 나한테 계속 말을 거시길래 일본 사람 아니라 일본어 못한다고 하니 질문이 더 많아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볼 때부터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ㅠㅠ 한국 사람인 걸 알면 대화 중이던 바로 그 욘사마랑 지우히메에 대해 계속 질문할 게 뻔하니까!!! 나 그 드라마 본 적 없그든 ㅠㅠ 좀 느긋하게 쉬어가려고 했는데, 너무나 열정적으로 한국 드라마 관련 질문을 계속하셔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빠져나왔다.
일본어 못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사루사와 연못에서의 축제 – 우네메 마츠리(采女祭り) ★★★★☆
- 주소: Noborioji-cho, Nara
Day 4 나라현 여행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사루사와 연못으로 이동하니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정확히 몇 시에 시작하는 모르지만 보름달 얘기를 했으니 어두워져야 시작하는 것일 게다. 연못 주변으로 슬슬 간이 음식 매대 설치가 한창인 것 보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산조 거리의 상점가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슬슬 어두워지는 5시 반을 넘긴 시각, 다리품을 파는 대신 일찍 연못가에 자리 잡고 앉아서 쉬며 기다려야겠다 싶어 명당자리를 맡아 놓고 판매를 시작한 음식 매대에서 야키우동을 주문해 저녁을 먹었다. 매대에서 파는 음식이라 300엔으로 아주 저렴했지만 맛도 좋았던 저녁을 맛있게 먹고 어두워지길 계속 기다리니 문제가 발생했다.
화장실 방문이 시급함!
동행이 없는 난 일찍 맡아둔 명당자리를 뜨는 순간 앉을 자리가 없어지는데 대신 자리를 맡아 줄 사람도 없고 어쩌란 말인가!!! 옆자리에 앉아 계신 엄마 또래 아주머니들께 철판 깔고 부탁을 했다. 토이레에 다녀와야 하는데 자리를 맡아 달라는 내 의사를 손짓 발짓으로 간절히 부탁!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는 아주머니 덕에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화장실 배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화장실 방문 후 다시 일행인 것 마냥 원래 자리로 돌아오니 내게 집중되는 시선!
난 한국인인데!
말을 튼 기념으로 질문을 하실 줄 알았다. 화장실 부탁하기 전에도 계속 날 쳐다보셨었거든… 역시나 이런저런 질문 시작~ 외국에서 왔냐, 혼자 여행 왔냐, 왜 일본어를 못하냐, 외국에 살아도 모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에서 듣고 있던 나 상당히 당황함.
“와타시와 니혼진데와 아리마센. 와타시와 강코쿠징데스”
듣고 있던 아주머니들 단체로 놀람. 난데 일본인이 아니냐고 물으시면 일본인이 아니니까 일본인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가오(얼굴)가 일본인처럼 생겼다는데 대체 어디가? 오또오상 어쩌고 오까아상 어쩌고 니혼진 어쩌고 하시는 말씀이 대충 부모 중에 일본인이 있는 거 아니냐는 것 같다. 눈치 100단임.
“와타시와 햐쿠파센토 강코쿠징데스”
진짜 저렴한 일본어로 이렇게 의사소통을 하다니 놀랍다. 내 생존 일본어 교육을 도와준 japanesepod101.com의 스티브 갈란테에게 감사하는 바이다. ㅋㅋㅋ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내 의복이나 헤어스타일이 보편적인 한국인 스타일이 아니라 이런 오해가 생기는 듯하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도 동양인은 패션 스타일로 한/중/일 구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은 대부분 예전부터 입었던 북미에서 구매한 옷이니까 한국 스타일이 아닌 건 맞다. 심지어 일본인이 많이 방문하는 명동에 밥 먹으러 가면 아주 자연스럽게 내 동행에게는 한국어 메뉴, 나에게는 일본어 메뉴를 준다. 그때마다 일본어 메뉴 말고 영어나 한국어 메뉴 달라고 말하면 ‘어머! 한국어를 너무 잘 하네!!!’하며 칭찬을 막 하시거든. 쓰읍… 그 이후에도 내 호구조사 + 오만가지 질문을 하셔서 축제가 빨리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한 우네메 마츠리
축제는 7시가 넘어서 시작했다. 당일에는 무슨 축제인지도 모르고 봤지만 그냥 뭔가를 본다는 것 자체를 즐겼다. 이 글을 쓰면서 대체 이날 내가 본 축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보다 알게 되었다. 일본 왕궁에는 우네메라는 여성 관직(대략 궁녀)이 존재하는데, 한 우네메가 본인이 사랑하는 왕의 사랑을 얻지 못해 비관하여 연못에서 자결을 하였고 사람들은 그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보름달이 뜨는 가을밤(추석)에 연못에 배를 띄운 것에서 유래한 축제라고 한다. 유래를 알고 나니 딱히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간사이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축제가 막을 내리고 출국일인 내일을 위한 짐 정리를 위해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려 했지만, 옆자리 아주머니의 강권으로 인하여 아주머니 집까지 방문! 아주머니 집이 바로 근처라며 간식 먹고 가라고 엄청 붙잡으셔서(거절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음) 그 집에서 간식을 주셔서 먹고, 음료수 주셔서 먹고, 아들딸 사진 보여주셔서 보고, 무슨 이야기인지 거의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한참 들었다. 남편분 얘기는 안 하시는 것으로 보아 이혼 또는 사별? 혼자 사셔서 외로우셨나 보다. 딸은 직장 때문에 근처 도시에서 자취해서 따로 살고 아들은 얼마 전에 홋카이도로 이사 갔다고 한다. 중학교 수학 선생님 한다고 함. 이야기 도중에 아들에게 전화도 거셨다. ㅋㅋㅋ 미쳐~ 펜팔을 하자며 적어 주신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서야 겨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나라현 여행을 마치며
교토보다 더 오래된 한반도 도래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나라현 여행이었다. 다카마스 고분은 이동 동선이 매우 비효율적이라 이번 일정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많이 아쉽다. 그리고 (과도하게) 친절하셨던 동네 주민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좋은 기억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어로 대화가 안되는 걸 억지로 대화를 이어 나가려니 힘들었는데, 그것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다. 문제는 내가 말로는 생존 일본어를 조금 하지만 글은 전혀 못 쓴다는 점이다. 田村 아주머니, 펜팔을 원하셨지만 일본어 문맹이라 그건 좀 어렵겠어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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