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새벽, 삿포로 지진은 너무도 갑자기 찾아왔다.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급격한 흔들림에 순식간에 잠에서 깼다. 평생 지진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삿포로에 지진이 발생했음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흔들림이 엄청 강했다. 처음에는 상하로 한참을 심하게 흔들리다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곧바로 좌우로 매우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텔 객실의 옷장이 미닫이 문이라 좌우의 흔들림에 맞춰 좌로 스르륵 쾅~ 우로 스르륵 쾅~ 요란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옆 침대에서 조용히 누워있던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이거 지진이구나.’
‘응, 지진이야.’
‘엄청 심하게 흔들리네.’
‘그러네, 근데 롤러코스터 같아서 좀 재밌으려 해.’
‘뭐라고?’
상하 운동에 비해 한참을 길게 이어졌던 좌우 운동이 멈추자, 호텔 비상등이 켜지고 곧이어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제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말인 듯했다. TV 뉴스를 확인할까 싶어 켜 보았지만 아직 속보가 나가지 않은 듯 삿포로 지진 관련 뉴스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다시 TV를 켜 보니 전원이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비상등 외 방 안의 다른 전등들이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전기가 나간 듯했다. 전기가 나간 것 외에 호텔 객실은 너무나 멀쩡했다. 분명 엄청 강한 지진이 분명한데 역시 일본의 내진 설계는 참으로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태평하게 우리 모녀는 조금이라도 더 휴식을 취한다고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지는 못했기에 간간이 핸드폰으로 삿포로 지진 관련 뉴스 검색을 시도했다. 지진이 멈추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니 드디어 삿포로 지진 속보가 뉴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글의 목차
삿포로 지진 그리고 정전
훗날 알고 보니 흔들림이 멈추자 대부분 건물 밖으로 대피했던 모양이다. 다들 무서워서 호텔 안에 있을 수 없었다는 체험기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건물이 무너지면 다 죽는 거니까 도로로 나와있는 것이 바른 대처법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던 M 호텔은 지진 직후 호텔 안에 있어도 괜찮다고 안내방송을 했기에 별 의심 없이 침대에서 이리저리 편안하게 뒹굴었다.
1~2 시간이 지나고 동이 틀 무렵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음식물을 사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 이런… 이렇게 방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구나 싶었다. 프런트에 가서 상황도 물어보고, 전기 복구가 언제 될지 모르니 간단히 먹을 것도 사 둬야 할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객실이 13층이라는 것이었다. 체크인 때만 해도 무료 업그레이드로 전망 좋은 높은 층으로 배정해 준다기에 얼씨구나 했다.
얼씨구나는 개뿔! 전기가 없으니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가야 한단 말이지
덕분에 다음날 체크아웃 전까지 13층을 칠흑같이 어두운 비상계단으로 오르내리느라 지옥을 맛보았다. 특히 체크아웃 때까지 전기가 복구가 되지 않아,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계단을 내려가느라 로비에 도착해서 거의 실신할 뻔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재난 상황, 의식주를 챙기자!
편의점 간편식 확보
부상이나 고립 등 신변에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체감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의식주 해결일 것이다. 우선 모든 교통수단의 운행은 중지된 상황이었으니 삿포로 고립은 확실했다. 삿포로 지진 후 발생한 정전과 그 뒤를 이은 단수로 도시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당연히 복구 전까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필연적으로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호텔 측에서 지진 당일 아침에 생수와 빵, 바나나를 나눠주었기에 여유를 부리다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물건이 몽땅 털린 후였다.
삿포로 지진 당일 매장을 오픈한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이 유일했다. (적어도 스스키노 주변은 그러했다.) 하지만 대부분 모두 텅 빈 상태로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한없이 걸어갔을 즈음 아직 남은 물건을 팔고 있는 세븐일레븐 매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들은 안에 물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아걸고 열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매장을 오픈해준 세븐일레븐에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숙박할 곳 찾기
먹거리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숙박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연히 추가로 숙소에 체크인하는 손님이 없을 테니 머물던 숙소에서 숙박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때 정말 황당했다.) 사실 정전에 단수 상황이니 영업이 어려웠겠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안내방송이나 로비 메시지 보드에 공지를 해 줬어야 했다. 손님이 일일이 문의하기 전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당장 체크아웃을 하면 객실 손님들은 갈 곳이 없고, 타지 사람이므로 정보력도 부족하고, 정전으로 핸드폰 배터리가 나간 경우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호텔 직원들이 근처 대피소 위치라도 확인해 알려줘야 하는데, 배째라 정신인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호텔 직원들도 자기 집을 돌봐야 하므로 소수의 필수 인원만 남아있는 상태라 투숙객에게 제대로 된 도움도 주지 못한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도와줄 마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안내방송도 영어로 전혀 해 주지 않았다. 결국 숙박하던 외국인이 참다 못해 호텔 내 마이크를 빌려 대신 전할 말이 있다며 안내를 했으니 말 다 했다. 난 외국인이라 치고, 내 앞에서 체크아웃을 하던 일본인 아저씨가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정보와 도움도 주지 않을 수 있냐며 이 호텔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본인 지인들에게 다 얘기하겠다며 역정을 내시는 걸 보고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M 호텔, 반성하세요!”
실시간 정보 공유
막막한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최고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은 바로 네이버의 일본 여행 카페였다. 대한민국 네티즌의 힘은 대단했다. 이 포스팅을 통해 [북해도로 가자]와 [네일동] 카페 운영진 및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해준 많은 회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카페에서 서로서로 공유한 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삿포로 지진의 피해 상황, 정전 복구 상황, 공항 및 기타 교통수단 운행 상황 등 유익한 정보가 가득했다. 삿포로 지진 대피소 위치 또한 카페에서 어느 대피소에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사전에 확인할 수 있어, 다음 날 호텔 체크아웃 후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삿포로 지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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