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초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초대형 태풍 제비와 지진으로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 준 여름 끝자락의 삿포로 여행! 끝도 없이 이어졌던 폭염의 여파로 피폐해진 심신에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떠났는데, 병만 얻어왔던 삿포로 여행! 하아… 사실 몸이 고되긴 했지만 배운 것도 매우 많았던 여행이었다. 자연 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답게 일본의 재난 대처 능력을 겪어보니 감탄 그 자체였고, 정말 부럽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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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여행 전 태풍 제비 경로 확인하느라 정신 없던 8월 말
제21호 태풍 제비가 일본 쪽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삿포로 여행 출발 1주일 전부터 거의 매일 태풍 경로를 확인했다. 솔직히 홋카이도 지역이 태풍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설마설마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올 한해 무더위만큼 강력한 태풍이 이미 수차례 지나간 터라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매일같이 달라지는 태풍 예상 경로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은 태풍 이동경로를 확인했던 것 같다. 출국 1~2일 전이 되니 제비 씨의 예상 경로가 거의 확정되는 듯하였다. 규슈와 관서 지방이 위험지역이었고 홋카이도는 옆으로 비켜 가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비바람이 예상되었다.
모든 게 만족스러웠던 삿포로 여행 첫날 (9월 3일)
삿포로 여행 첫날, 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스스키노에 도착해 머큐어 삿포로 (Mercure Sapporo) 호텔에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다. 무슨 이유에선지 Early Check-in도 해주고 예약한 객실도 무료로 프레스티지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높은 층이라 전망이 좋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며칠 뒤 이 높고 높은 층은 내게 지옥을 선사했지만, 처음에는 아주 해피했다.
잠시 휴식 후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JINS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언어소통 문제가 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복병은 언어가 아닌 사이즈였다. 다행히 점원의 도움으로 어린이용 안경을 구매할 수 있었다. 자세한 안경 구매 후기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안경을 맞추고 나오니 벌써 어둑했다. 인천공항 행 첫 리무진을 타기 위해 새벽 2시부터 시작된 하루였기에 약간 이른 저녁을 먹고 푹 쉬기로 했다. 귀차니즘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터라 멀리 가지 않고 머큐어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니쇼군 삿포로 본점 (北海道かに将軍 札幌本店)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 털게 코스요리는 양이 너무 많아 보였기에 최대한 양이 적은 메뉴로 시켰다. 그 덕에 털게가 아닌 그냥 대게 메뉴로 고를 수 밖에 없었다.
2년 전 삿포로 여행 때 먹었던 카니혼케(かに本家) 본점과 비교하면 맛이나 서비스 등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맛은 덜했지만 호텔 바로 앞이라는 위치적 장점은 최고였다. 배부르고 피곤 몰려올 때 횡단보도만 건너면 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선 삿포로 여행 둘째 날 (9월 4일)
아침부터 비, 바람, 구름, 햇빛이 오락가락하며 제비 씨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니조시장(二条市場)에서 우니동으로 배불리 아침을 먹고 다누키코지(狸小路) 상점가를 둘러보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 날씨가 되려 맑아지길래 삿포로 히쓰지가오카 전망대(さっぽろ羊ヶ丘展望台)로 향했다.
호스이스스키노역(豊水すすきの駅)에서 토호선(東豊線 Tōhō-sen)의 종점인 후쿠미즈역(福住駅)에서 내린 후, 4번 버스 승강장에서 福84번 버스를 타면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 도착한다. 히쓰지가오카 행 버스의 배차간격이 평일에는 매시 20분과 50분, 주말에는 약 15~25분 간격이므로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다음 버스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수 있다.
버스를 타자마자 빗방울이 점차 거세지더니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비바람이 상당했다. 우산이 있어도 바람이 거세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전망대 매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비바람이 잦아들 때 잠깐씩 나와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저녁 시간이 되니 본격적으로 태풍의 위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로 스아게플러스(Suage+)에서 수프카레를 먹고 나오니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있었다. 몸이 날아갈 듯한 바람에 겨우겨우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4일 밤 사이에 홋카이도를 비켜 지나간다 하니 얌전히 호텔방에서 태풍 뉴스나 봐야겠다 하고 객실 내 TV를 켜니 간사이공항 고립 상황이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헐… 이게 대체 뭔 일! 밖의 바람소리가 더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삿포로 여행 셋째 날, 폭풍전야란 바로 이런 것인가? (9월 5일)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뉴스를 확인했다. 간사이공항의 피해는 어마어마해 보였다. 여전히 공항 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르는 듯했다. 전기도 끊겼고 먹을 것도 없고 완전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삿포로 시내는 제비 씨에 의한 별다른 피해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JR은 운행 중단 상태로 운행 개제도 불확실한 상황이란다. 철로 쪽에 손상이 있나 싶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사히 잘 넘어갔다 생각해 오타루 일정은 포기하기로 하고 삿포로 팩토리와 삿포로역 근처에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간밤의 흔적이 선명히 보였다. 비보다 바람이 심했다더니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도로에 가득했고 몇몇 군데 보수를 하고 있는 곳도 보였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친 덕분에 하늘은 맑기만 한 상황이었다.
한참을 아이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삿포로 역으로 갔다. 여전히 기차는 운행 중단 상태였지만, 캐리어를 끌고 방황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상할 따름이었다. 하아… 이것이 바로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닥칠 모습이었던 것인데 그때는 몰랐을 뿐이었다.
삿포로 역에 온 김에 추오(中央) 버스 안내 센터에 가서 다음날 투어버스 운행이 가능한지 확인을 해 보았다. 넷째 날은 시코츠/도야호 일일 버스투어를 계획한 상황이었는데 JR도 운행 중단 상황이니 투어버스 운영 또한 차질이 있을 듯싶었다. 역시나 당일 버스 투어는 모두 취소된 상태고 내일 일정은 내일 가 봐야 안다는 참으로 어정쩡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나 확실치 않은 상황은 빠르게 포기하는 게 맘 편한 법이라, 이 일정 역시 쿨하게 취소하고 마트에 들러 필요한 식자재 쇼핑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쇼핑은 여행 마지막 날에 하는 편인데, 별다른 일정이 없다 보니 마트와 약국 쇼핑도 일찌감치 모두 끝냈다.
다음날 일정이 고민되던 밤 찾아온 지진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이는데 일정은 모두 취소 상태였기에, 다음 날도 삿포로 시내에서 하루를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시내 웬만한 곳은 다 가본 곳이라 삿포로 시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궁리를 해 보았으나, 마땅히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한참 고민 끝에 홋카이도개척촌(北海道開拓の村)이나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을 후보지로 고른 후 자정이 넘어 겨우 잠에 드는가 싶었는데…
9월 6일 새벽 3시 7분
규모 6.7의 강지진 발생
그래요, 그래. 지진이 났더랍니다! 흔들흔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이 심하게 상하로 흔들리더니 바로 좌우로 격하게 흔들리는 내 생애 첫 지진을 경험했다. 슬라이딩 도어였던 객실 내 옷장 문이 미친 듯이 이리 쾅 저리 쾅 하는 통에 잠 든지 2~3시간 만에 강제 기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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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열심히 업데이트를 하였구나!!
엇! 칭구~ 너무 오래 방치를 해서 반성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