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가득한 한국생활

한국 나이로 서른. 한국 귀국 2년. 아무래도 난 한국생활 부적응자 같다. 평생 나는 내가 적응력 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청소년 시절 한국에서 미국, 사회인이 되면서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여러 차례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적응이 엄청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냥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정도로 여겨졌을 뿐. 그런데 분명 내 국적은 한국이고, 중학생까지는 한국에서 살았었음에도 불구하고 13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지 내게 한국생활 적응은 ANOTHER LEVEL이다.

한국생활 – 언어 차이보다 힘든 사고방식의 차이

분명 내 모국이고 내 모국어를 쓰며 살고 있지만, 외국어를 쓰며 사는 외국 생활 보다 더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내 사고방식은 보편적인 한국인의 사고방식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났고 사람들과 자꾸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오랜 타국 생활로 인해 서구화되었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난 원래부터 그랬다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어린이 시절부터 남들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아직은 미성년의 나이라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유별나다, 까다롭다, 독특하다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내가 남들과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다름을 수시로 지적하곤 했다. 물론 지적만 할 뿐이지 그에 따른 불이익을 겪지는 않았다.

요즘 한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왕따니 뭐니 하면서 남들과 다른 면이 있는 애들에게 엄청 폭력적으로 군다더라.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을 보낸 80~90년대는 학생 간 폭력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폭력이란 자고로 선생이 학생에게 행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학생이던 선생이던 건들지 않았고, 교내에서 대체로 갑의 지위를 가졌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기에 내가 유별나든 까다롭든 독특하든 간에 그것을 이유로 내게 시비를 거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코멘트가 듣기 좋았던 건 절대 아니다.

내 다름이 당연함으로 여겨지던 외국 생활

타국에서의 언어 차이는 물론 어렵긴 했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의사소통이 어렵고 그에 따른 곤란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언어 차이의 문제는 내가 말을 못 알아듣고 제대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해 서러운 것이지 분노의 영역이 아니다. 사고나 가치관에 대립이 생길 때 분노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별남, 까다로움, 독특함으로 폄하되던 나는 서구 사회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그들과 너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기준으로 난 분명 외국인인데 전혀 외국인스럽지 않은 그냥 그들 중 하나인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난 언어 차이를 빼면 딱히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들의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난 내가 적응력이 갑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한국에서 살 때 사람들이 나보고 엄청 까다롭다고 했다고 말할 때마다 내 친구들은 나에게 너처럼 안 까다로운 사람을 대체 왜 까다롭다고 평가하냐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국 사회 부적응자

내가 오랜 타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오니 지난 13년간 듣지 못했던 말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 까칠하다, 유별나다 등등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다시 시작된 것이다. 10년 넘게 정반대의 수식어를 듣고 살다 보니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맞아, 한국에서 나는 까다롭고 까칠하고 유별난 인간이었지? 그 옛날 학창 시절 나는 갑의 위치였지만, 사회인으로서 나는 대리급에 불과한 인간인 것이다.

북미에서는 내가 사원급이던 대리급이던 과장급이던 부장급이던 상관없이 개인의 의사를 피력할 수 있고, 논리에 맞으면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사회는 그게 불가능해 보인다. 상관이 개소리를 해도 무조건 네…를 외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나란 인간

  • 왜 정해진 연차를 쓰겠다고 하면 역적이 될까? 연말에 돈으로 받으라는데 나는 돈으로 안 받고 그냥 쓰겠다는 게 대역죄인 거야?
  • 업무시간에 스포츠 보고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고 수다 떨다 야근하는 건 아주 훌륭한 직원의 자세인데, 업무시간 내내 화장실만 겨우 다녀오고 쉴 틈 없이 일한 후 칼퇴 하면 직원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게 되는 걸까?
  • 일요일 단 하루 쉬는데 그날 출근해 일을 하거나 직원 친목을 위한 MT에 참여하는 게 왜 당연한 거야?
  • 왜 회사에 손님이 오는데 남직원이 커피를 타면 맛이 없고, 여직원이 커피를 타면 맛있어지는 거지?
  • 내 돈 주고 점심 사 먹는데 메뉴는 왜 맨날 윗대가리가 시킨 메뉴로 통일해야 해? 신입이 시킨 메뉴로 통일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같이 안 먹고 혼자서 조용히 따로 먹는다고 해도 불만인 이유는 대체 무엇?
  • 왜 꼭 해외출장은 주말을 껴서 가고, 귀국해도 주말 내내 근무한 것에 대한 대체휴무일을 안 주는데?
  • 분명히 잘못된 지시라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냐 의견 제시하면 발작하는 이유는?

퇴사, 그리고 전직 – 새로운 한국생활을 기대하며

지난 6월 미국 출장을 다녀오고 퇴사를 결심했다. 영어가 출장 멤버 중 나만 되는 건 알겠는데, 사장 놈과 남직원들 스트립 바에 가는 데 동행해서 통역을 해달라고 하는 건 노동청 고소 감 아니던가? 다들 유부남인 주제에 감히 출장 중에 더럽게 놀고 싶냔 말이다. 저녁 먹다가 개빡쳐서 접시로 대가리 후려치고 싶은 것 간신히 참았다.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해 보시라. 귀국해서 사모님께 스트립바에 대해 상세히 설명 전화드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와버렸다. 추잡하고 역겨운 놈들…

귀국하고 바로 사직서를 내려고 했지만 이력서에 1.5년이라는 기간을 채우고 싶었기에 꾹꾹 눌러 참고 9월 초에 사직서를 냈다. 미국은 2 weeks notice 면 되는데 한국은 어떨지 몰라 최대 3개월 줄 테니 빨리 사람을 구하라고 했다. 난 길어도 9월 말까지는 사람이 구해질 줄 알았다. 그에 맞춰 9월 말 연차 소진 후 퇴사하기 위해 일본 여행까지 다 짜 놨지만 일본 여행 이후에도 계속 출근을 해야 했다.

사람을 안 구하는 것인지 못 구하는 것인지 짜증이 치솟아 구하던 말던 그만 나오겠다 선언을 하고 나서야 11월 중순에 겨우 퇴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진상도 이런 진상이 따로 없다. 덕분에 퇴사한 후 잠시 쉬면서 구직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길게도 이어진 대체 인력 구인 기간 덕에 퇴사 전에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참기 어려운 직장 생활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니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퇴사하자마자 앓아누웠다. 독감인지 정말 열흘이 넘게 누워만 있다 겨우 몸을 추슬렀더니 벌써 28일…. 12월부터 첫 출근인데 그때까지 다 나을까 심히 걱정된다. 원래는 2008년 1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레 12월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이렇게 심각하게 앓을 줄 알았다면 시작일 변경은 어렵다고 말하는 건데…

회사원으로서의 한국생활 적응은 내게 너무도 어려울 것 같아 디자이너라는 본업을 버리고 영어강사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도 내가 영어가 가능하단 이유로 디자인 업무와는 별개로 해외영업/마케팅 업무 지원을 너무 많이 요구해서 내가 해외영업/마케팅 직원인지 디자인팀 직원인지 구분이 안 가던 상황이었다. 2명이 할 일을 내가 전부 하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느니 그냥 영어 능력만으로 먹고살아 보기로 했다…

회사원이 아닌 한국생활은 무난히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국립공원여권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서울 신용카드 인천 일본 일상 전라도 제주 충청도 캄보디아 코로나19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