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통영 소매물도에 다녀오기 위해 토요일 근무를 마치자마자 고속버스를 타고 나 홀로 통영 여행을 떠났다. 통영에 볼거리가 엄청 많다는 소문에 현충일인 화요일까지 3박 4일의 일정을 계획했으나 6일인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나는 계획한 일정을 중도에 취소하고 어제 오후에 집에 돌아왔다. 배가 너무 고파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통영 관광지 주변 식당은 1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 고로 어느 누군가가 나처럼 나 홀로 통영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진심으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인생 첫 통영 방문에 거지 같은 첫인상 만들어 준 관광지 식당 주인들에게 쌍 fuck you를 날린다.
이 글의 목차
험난한 나 홀로 통영 여행
식당에서 1인 손님을 거부하는 건 우리나라 음식 스타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찌게, 전골, 탕 등 많은 양을 한 번에 요리하기 때문에 최소 2인 이상은 되어야 주문이 가능한 그런 메뉴가 너무도 많고 특히 바닷가는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그건 이해하지만 식당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데 1인 메뉴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니!!! 완전 nonsense 아닌가?
식당에 홀로 들어서는 순간 혹시 일행이 없냐 물어보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1인은 안 파니까 나가라고 하더라. 근데 이게 어쩌다 한 식당만 그랬다면 내가 식당을 잘못 골랐구나 하겠는데 가는 곳마다 족족 쫓아내니 기분이 더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인 메뉴를 안 팔면 2인분으로 주문해서 먹겠다고 해도 나가라는데 눈이 빡 돌아서 결국 쌍욕을 메들리로 날려줬다. 내 기분이 상한 만큼 식당 주인 기분도 아주 더럽게 만들어 주고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분이! 매우 더럽다!!!
물론 통영 시내는 전혀 다를 것이다. 거긴 관광지가 아니니까 음식점 종류도 다양할 것이다. 김밥 집도 있을 거고 만둣집도 있을 거고 당연히 1인 메뉴가 많겠지. 그러나 나는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 숙박하는 뚜벅이 여행자라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통영 시내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바닷가라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대체로 찌게, 전골, 탕이 주류를 이루는 건 알겠지만, 혼자 왔다고 손님으로 받지도 않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해물파전 그딴 거라도 팔 수 있잖아? 그것도 2인 이상이 돼야 먹을 수 있는 거야? 나 홀로 통영 여행은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는 게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통영에서 2박 3일간 먹은 음식 목록
- 6월 3일 (토) – 저녁: 컵라면과 소세지
- 6월 4일 (일) – 아침: 삼각김밥. 점심: 충무김밥. 저녁: 컵라면, 과자
- 6월 5일 (월) – 아침: 삼각김밥. 점심: 김밥
3일 통영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라 숙소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시지로 저녁을 때웠다. 4일 아침 소매물도에 첫배로 입도하기 위해 아침은 역시 편의점에서 때우고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소매물도에서 먹을 점심으로 다들 충무김밥 도시락을 사서 배를 탄다길래 나도 그렇게 점심으로 충무김밥 도시락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고 했으나 식당마다 쫓겨나 다시 편의점에서 라면 먹음.
5일 아침도 역시 편의점에서 때우고, 점심은 다시 식당을 시도해 봤으나 역시 몽땅 쫓겨남. 분노의 욕설을 쏟아내며 식당 주인과 대거리 중 지나가던 통영 시민이 상황을 지켜보시곤 본인이 먹으려고 집에서 만들어 온 김밥 도시락을 차에서 꺼내 와 내게 주셨다. 통영이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닌데 미안하다며 이거 먹고 맘 풀라고 하셨다.
너무나 착하신 분! 천사 강림! 복받으실 거예요!
보통 예의상 사양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데, 배가 너무 고파서 눈까리가 회까닥한 상태였던지라 감사드린다는 말고 함께 덥석 받아서 냠냠 먹었다. 그리고 기운을 내 통영종합버스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 타고 바로 서울로 돌아와 나 홀로 통영 여행은 몹시도 안 좋게 조기 종료되었다. 매우 불쾌한 상황이었지만 중대한 교훈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바닷가는 혼자 여행 가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 나 홀로 여행을 떠난다면 바닷가는 절대 No, No! 편의점 음식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 말자. 아니면 여행 동행자를 구하던가… 엄마, 한국에 빨리 와! 나 너무 서러워…
통영 소매물도
배가 무척 고팠던 나 홀로 통영 여행이었지만 그래 목표였던 소매물도는 무사히 다녀왔다. 일요일 아침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첫 배로 소매물도에 입도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썰물 때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오갈 수 있는 몽돌길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간에 잘 맞춰 등대섬에 다녀와야 한다.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차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물이 차오르는 시점에 위 사진처럼 이 몽돌길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이동하려는 경우라면 방법이 없다. 그냥 포기! 등대섬에서 소매물도로 이동하려는 경우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전력 질주하자!
나는 물이 그렇게 빨리 찰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등대섬에서 내려가는 길에 여유를 부리다 몽돌길을 건너시던 분들이 물들어오니까 빨리 뛰라고 소리치셔서, 이 소리를 듣고 나를 포함한 등대섬에 남아있던 관광객 여럿이 숨넘어가게 뛰어야 했다. 저질 체력 소유자인 나는 헐떡거리며 뛰다 결국 신발 다 적시면서 몽돌길을 건너야 했다.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통영 소매물도
소매물도는 아직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각도로 보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하는 소매물도! 그러나 걷는 길이 따로 없어 경사면을 따라 걸을 때 너무 미끄러웠다. 물론 컨버스 따위의 신발을 신고 간 내 잘못이다. 등산화, 아니 하다못해 운동화라도 신고 갔어야 했는데 그 어느 것도 보유하지 않은 나란 인간… 편의 시설이 없다는 건 알았어도 길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직 자연과 친하지 않아 기본 상식이 많이 부족함을 새삼 느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계속 미끄러지는데 흑염소님은 어찌나 경쾌하게 경사면을 뛰어다니는지 부러워 죽는 줄!!!
소매물도는 길도 없고 다른 편의 시설도 전혀 없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화장실도 갈 수 없다. 그러니 중간에 물을 많이 먹으면 곤란해진다. 화장실을 가려면 무조건 등대섬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등대섬으로 넘어가는 길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지… 마지막 난코스인 급경사 절벽길을 무사히 내려가야 등대섬을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절대 쉽지 않다. 내려가는 것도 장난 아니지만 나중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같은 배를 타고 오신 분들 중에서 절벽까지 갔다가 그냥 되돌아가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아직 20대니까 힘을 내보자 마음을 먹고 절벽을 내려갔지만, 웬수 같은 컨버스 신발 때문에 너무 미끄러워 황천길 여러 번 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힘들게 등대섬에 도착하면 그나마 올라가는 데크길도 만들어져 있고 화장실도 있다. 아무래도 등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등대섬에는 약간의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 등대섬도 끝까지 올라가려면 다리품을 엄청 팔아야 하는데, 나는 미끄러운 신발 덕에 다리 힘이 많이 빠진 상태라 다시 되돌아갈 때를 위해 등대섬 중간 지점까지만 다녀왔다. 다리 힘이 빠진 상태라 되돌아가는 길은 몇 곱절 더 힘들었다. 되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의 연속인데, 계속 미끄러져서 제자리걸음. 통영항으로 돌아가는 배 시간을 놓칠까 봐 나중엔 자꾸 미끄러지는 신발을 벗은 채로 두 손까지 합세하여 네 발로 오르막을 올랐다.
양말보다 미끄러운 컨버스 신발 밑창이라니…
충렬사와 세병관
배도 고프고 날도 더워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한 상태라 대충 둘러보는 정도로 마무리한 곳이라 좀 아쉽다. 통영답게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는데, 충렬사(忠烈祠)는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1606년 왕명으로 사당을 세운 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남부 지방이라 그런지 아름드리 멋진 나무들과 잘 어우러져 사당 내 풍경이 참 보기 좋았다.
무려 국보인 세병관(洗兵館)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1605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남해 지역에 몇 없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이라고 한다.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 크기가 엄청나기에 사진 3장을 이어 붙여야만 세병관의 전체 모습을 한 앵글에 담을 수 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세병관의 크기는 정면 9칸, 옆면 5칸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무척 힘들었는데 세병관에 올라 우물마루에 대(大) 자로 누워 있으니 진짜 시원했다. 특히 내가 방문한 시간에 다른 방문객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전세 낸 것 마냥 누워서 푹 쉬었다. 여행하는 내내 계속 제대로 못 먹어서 기운이 없으니 누울 자리밖에 안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세병관은 정말 멋졌다.
한국 여행에 꼭 필요한 교훈을 얻다
정말 힘들었던 나 홀로 통영 여행이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 여행에 꼭 필요한 교훈을 얻었다:
- 바닷가는 혼자 여행 가면 굶어 죽기 딱 좋다.
- 혼자 다니면 이상하게 혹은 신기하게 생각한다.
- 6월부터는 무더운 여름이니 싸돌아다니지 말자.
직전 여행이었던 부여 여행에서도 혼자 여행 온 사실을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통영 여행에서 나와 마주친 모든 분들이 다 내가 혼자 여행온 것을 무척 신기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나 홀로 여행자에게는 밥도 안 파니 말 다 했지 뭐…
그래도 부여에서는 밥은 먹여줬다. 먹여주면서 신기해했지…
내가 한국에 없었던 십수 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이제 한국의 6월은 찜통더위다. 돌아다니면 안 되는 날씨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 여행을 하려면 되도록 5월 전, 늦어도 5월 중순 전에 날씨를 봐 가며 다녀야 하며 가을이 되기 전까진 얌전히 집에 있어야 한다! 고로 다음 블로그 포스팅은 가을이 될 때까지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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