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나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9월 중순에 이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며 지내다 보니 내일이 벌써 10월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된 서울살이는? 솔직히 별로다. 인간의 무덤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딜 가나 인간으로 가득 찬 서울이 적응이 안된다. 난 80년대의 서울이 그립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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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에서 다시 시작하는 서울살이
이번 서울살이는 최대한 미세먼지와 황사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북한산 자락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다. 아무래도 산이 지척이면 미세먼지가 조금이라도 중화가 되지 않을까? 부동산 중개사의 차를 타고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샛길로 다니셔서 정확하게 인지를 못했는데, 새롭게 구한 서울살이 집은 북한산만큼 높았다. 공기질을 위해 산 근처이길 바라긴 했지만, 산 보다 높고 싶진 않았는데…
이삿날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운전을 하고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정말 멘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길의 정상에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절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오르막이 아니었다. 심지어 북한산 둘레길보다 우리 집이 더 높다! 새로 계약한 집이 무려 2층인데 북한산 둘레길의 등산객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집 보러 왔을 땐 이렇게 어마어마한 오르막길은 보지 못했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이고!!!! 이미 계약을 했으니 무를 수도 없고. 그래도 최대한 장점을 찾아보자면…
- 공기는 보통의 서울과 사뭇 다르게 상쾌하다
- 서울 도심 한복판보다 온도가 낮다
- 북한산 둘레길을 밥 먹듯 갈 수 있다? (과연 갈까?)
- 다리 근육이 강제적으로 튼튼해진다? (근육이 파열되는 게 아닐까?)
- 눈 오면 썰매장을 안 가도 된다? (눈 오면 굴러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이삿짐 정리하면서 이것 저것 살 것들이 있어 집을 나설 땐 걸어서 나갔는데, 집에 돌아올 땐 항상 기어서 들어오게 되는 Magic 같은 동네이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외출이 불가하다. 다리가 덜덜 떨려서 나갈 수가 없다! 그래도 계속 지내다 보면 다리가 튼튼해지겠지?
1.5년 만의 서울살이 장점 뭐가 있을까?
▷▷▷ 촘촘한 대중교통
역시 서울의 인프라는 지방과 비교 불가다. 지방의 대중교통은 거의 없는 것과 다름이 없기에 자차 없이는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그 덕에 지금은 차주가 되었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내가 평소에 차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당분간 차는 마마님 장보시기 용으로 전락하게 될 듯.
▷▷▷ 대형 서점
내가 느끼는 서울살이의 또 다른 장점은 서점이다. 포항으로 처음 이사를 간 후 대형 서점이 없어서 정말 정말 힘들었다. 심심하면 서점을 갔었는데, 갑자기 서점에 가지 못하니 금단현상이 생겼다. 가장 가까운 대형 서점은 대구 아니면 부산까지 가야했다. 첫 시도는 대구였는데, 서점이 너무 아담하기도 했고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부산 센텀시티점 교보문고를 시도했으나, 여기 서점도 매우 아담… 대구 보다는 크니 센텀시티점으로 다니긴 했으나 너무 멀어!!!
▷▷▷ 외국 음식 접근성
그리고 외국 음식!!! 지방에서 외국 음식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광역시는 예외겠지만, 포항은 그리 많지 않다…가 아니라 거의 없다. 너무 아쉬웠는데, 다시 서울살이를 하니 한동안 열심히 이태원 맛집 탐방을 하게 될 듯.
▷▷▷ 그리고 일자리…
제일 핵심이지 않을까? 지방 인구는 갈수록 줄고 서울 인구는 갈수록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문제이다. 사실 포항에서는 떠나더라도 서울로 복귀하기 싫어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정말 일자리가 없었다. 내가 지역 인맥이 없어서 못 찾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용하는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 지역 일자리는 정말 너무 적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일자리 구하기 제일 쉬운 서울로 복귀 ㅠㅠ
지방 발령 보내 놓고 엿 먹인 P사는 꼴보기도 싫어 서울 이사 후 복귀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해 두었으니, 이제 다시 안정적인 서울살이를 위해 슬슬 일자리를 알아봐야지.
지방살이를 조기 종료하게 된 사연
미세먼지를 피해 2년을 계획하고 떠났던 포항살이는 1.5년 만에 조기 종료되었다. 우선 한국의 교육 환경은 초등학교, 중학교 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써는 교육기관의 부조리함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내 고용주와 내 근무처는 끊임없이 반목했다. 그래, 싸우든가 말든가 사실 내가 알 바 아니다. 물론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나랑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학장실 찾아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ㅠㅠ
한두 푼도 아닌 학비를 내고 다니는 학생들인데, 학교 행정을 그따위로 밖에 못하는 거냐? 외부 교육업체 발령 강사가 무슨 힘이 있겠냐만… 학생들은 그래도 내가 선생이라고 내게 사정 얘기를 한다. 얼마나 억울한지를… 언제나 그러했듯 나의 성향은 갑에게 매우 적대적인 성향이기에… 모른 척하기 힘들다. 물론 내가 학교에 따져서 계약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단지 학교 측에서는 나보고 학생들과 수업 외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고, 동의서 서명 절대 해주지 말라고 했다. 누구 맘대로? 내 서명하는 손은 내 소속이고, 난 서명해 줄 거야~
거기에 더해 내 고용주와 근무처는 서로 싸웠고, 싸움으로 인해 내 급여를 제때 주지 않았다. 핵심은 돈이지, 뭐. 급여를 제때 주지 않아 나에게 면목이 없다고 사죄는 했는데, 내 성격에 그런 사죄가 먹힐 리 만무하다.
“면목이 없다면서 언행이 불일치하시네요. 면목이 없으면 지금 내 눈에 댁 모가지 윗부분이 안 보여야 하는데. 여전이 모가지 위로 낯짝 잘 달고 있고 눈깔도 멀쩡히 뜨고 있는데 면목이 없기는 개뿔? 모가지 따고 눈깔 파 낸 다음에 다시 오세요.“
내 입은 필터가 없다. 그러니 입금을 잘 하지 그랬니? 내 말이 너무 충격이었는지, 아님 내가 꼴도 보기 싫었는지 다음 날 밀린 급여를 한꺼번에 입금해 줘서 정말 좋았다. 며칠 더 걸렸으면 내용증명 보낼 뻔~ 그리고 이제 방학이니 학교 사무실 오지 말라더라. ㅎㅎㅎ 나도 학기 종료되서 계약된 업무를 다 마쳤는데 내가 왜! 학교 사무실에 나가겠냐? 대가리에 생각이란 걸 하고 말을 하려무나..
다만 걱정인 부분이 전셋집 계약이 2년이라 6개월이 붕 뜨게 될 상황이었으나, 무슨 우연인지 집주인이 집을 일찍 비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바람에 되려 아귀가 잘 맞게 되었다. 다시 서울살이를 해야 할 팔자였나 보다. 사실 서울로 너무나 돌아가기 싫었던 나는 마마님께 포항이 아니더라도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 도시로 이사하는 건 어떠냐 운을 띄워 봤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 제안 거절한다!”
서울인의 지방 적응 불가능한 일인가?
마마님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대도시와 소도시의 정서가 너무 다르기에 섞이기 어렵다고 하셨다. 마마님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야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한정된 사람들과 보내고, 그 대상이 대학생인 만큼 아직은 열린 사고를 지닌 나이의 사람을 상대하며 지낸다. 그러나 일상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마마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표준어를 쓰는 우리 말투는 상당히 눈에 띄는 모양이다. 말을 안 할 땐 괜찮지만, 입을 여는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획 돌려서 동물 보듯 쳐다보곤 한다. 그냥 고개만 돌려서 쳐다보면 그나마 괜찮은데,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 눈깔 좀 어떻게 해 보렴. 당하는 사람 기분 매우 더럽다.
내 성격이 그리 부드럽지 않기에 여러 번 사람 기분 더럽게 왜 위아래로 훑어보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지만…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막상 따지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훑어 본 것이리라… 의도한 게 아니었어서 막상 상대방이 성질 내며 따지면 당황하는 것이다.
아직 이곳은 타지인이 익숙하지 않은 작은 도시인 것이다. 80년대 서울, 길에 외국인이 지나가면 모두가 눈깔 빠지게 쳐다보던 거랑 같은 상황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빤히 쳐다봤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 지금의 서울을 봐라! 완전 글로벌 해졌지… 포항도 10년쯤 지나면 옆에서 외계어를 해도 안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제발 쳐다보라고 고사를 지내도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것이다.
아직은 조금 이른 것 뿐이다.
서울살이 말고 시골살이 원츄
이제 막 서울살이를 다시 시작했지만, 어딜 가나 넘쳐나는 사람들과 교통체증을 목격하면 다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가 어릴 적 그리 복잡하지 않았던 80년대의 서울은 이젠 다시 보기 힘들겠지?
서울이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지만, 나는 그 옛날 내 어린 시절의 서울을 원한다. 드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북미에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폐소공포증이 생긴 것 같다. 서울살이에 개인에게 허락된 personal space는 내가 원하는 그것과 너무도 다르다. 지하철, 버스에서 느끼는 타인과의 밀착이 너무 힘들다.
언제 다시 서울살이를 팽개치고 떠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버텨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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