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탐방
20060507 @ 양화당 뒤편 언덕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풍경, 그리고 남산 타워

지난주 일요일, long-weekend의 마지막 날 창경궁 탐방에 나섰다. 바로 이틀 전 고난의 부여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얌전히 집에서 휴식을 하지 못하고 또다시 나들이에 나선 불굴의 정신! 물론 나도 계획은 다시 시작될 한 주를 위해 집에서 푹 쉴 예정이었다. 밖의 날씨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려 한국 귀국 5개월 차에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 파란 하늘 목격! 절대로 그냥 집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문화재 좋아하는 자로서 가볍게 창경궁 탐방 go go!

창경궁 탐방 – 예쁜 날씨로 더욱 예뻐 보이는 magic

사실 하늘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1년 중 300일 이상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기에 소중함도 몰랐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이노무 파란 하늘이 너무도 드문 event였던 것이다! 흐려서 회색이거나 황사라서 뿌옇거나 둘 중 하나인 나날들. 하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하지 않던가? 당연했던 파란 하늘이 당연하지 않으니 파란 하늘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20060507 @ 계절의 여왕 5월 다운 아름다운 날씨

사진기를 챙겨 들고 창경궁 탐방에 나섰다. 혜화역에서 내려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을 향해 돌담길을 걷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쾌적한 날씨로 생체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라 주위의 풍경이 더더욱 예뻐 보였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나뭇잎들.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는데 하늘이 하늘색으로 나와서 너무 좋았다. 이게 좋아할 포인트가 되다니요… 아흑.

창경궁 침전 권역

창경궁 탐방은 크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정전 & 편전 > 침전 > 후원 순서로 돌아보면 되는데, 창경궁에 막 도착했을 당시 명정전(明政殿)과 명정문(明政門) 사이의 공간인 정전 권역은 행사 준비가 한창이어서, 해당 구역은 skip 하고 명정전의 후문인 빈양문(賓陽門)을 통해 침전 권역으로 바로 이동했다.

함인정(涵仁亭)

20060507 @ 창경궁 함인정

빈양문을 통과해 본격적으로 창경궁 탐방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함인정! 편전과 침전의 완충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왕실 의례나 잔치, 신하들과 만나 경서를 읽는 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함인정 지붕의 모양새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늘이 새파래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마치 새가 날개를 활짝 편 것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지붕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원래는 이 위치에 성종 때 건립한 인양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인조 때 인왕산 아래 건설 중이던 인경궁에서 함인정을 철거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한옥은 건물을 분해하여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신기방기!

왕실 구성원의 생활 공간들

20060507 @ 시계방향으로 좌측 상단부터 통명전과 양화당, 양화당, 영춘헌, 집복헌

함인전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전진하면 창경궁 침전 권역 내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통명전(通明殿)과 양화당(養和堂)을 볼 수 있다. 그 뒤로 바로 돌담 형식의 화단이 있어 봄꽃이 피거나 단풍이 지면 예쁜 풍경을 즐길 수 있어 보였다. 우측 건너편으로 사도세자가 태어난 곳이라는 집복헌(集福軒)과 정조의 서재와 집무실로 쓰였다는 영춘헌(迎春軒)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도세자와 정조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영/정조 시대에 창경궁이 주로 사용된 것 같아 조금 더 공부를 해 보았더니…

  • 숙종 때 장희빈이 통명전 앞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
  • 영조 때 문정전 앞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
  • 정조 영춘헌에서 승하

그 유명한 숙종, 영조, 정조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이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는 지식을 머리에 입력해 본다.

창경궁의 후원

침전 권역을 다 둘러본 후 창경궁 탐방을 계속하기 위해 양화당 뒤편의 돌계단을 올라 창경궁의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 권역에서는 춘당지(春塘池)와 대온실(大溫室)을 만날 수 있다. 후원은 한자로 後苑인데 뒤 후(後) 자로 말 그대로 궁궐 뒤편에 위치한 정원이라는 말이다.

20060507 @ 창경궁의 후원에 위치한 춘당지

사실 내 기억 속 춘당지는…. 아주 어렸을 때 사람들이 오리 배를 타던 그런 곳이었다. 일제시대 궁궐에서 유원지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잔재를 없앤다고 동물원과 유원지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복원을 하면서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하여 어린이 시절 창경원이라고 부르던 습관을 고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습관이 무섭다고 자꾸 창경원으로 튀어나왔다가 앗, 그게 아니고 창경궁~~ 이렇게 버벅거림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 내 또래 아이들이 한 번쯤 겪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춘당지는 이제 예전의 모습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었다. 기분 좋은 변화지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격세지감… 우리나라는 뭐든 너무 빨리 변해서 약간의 세월에도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변화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말이지 창경원 시절에 동물원 구경도 와 본 사람인데… 나 아직 20대거든… 이게 참 나랑 불과 몇 살 차이 안 나도 너무 어려 기억을 못 하니 세대 차이 느껴지는 현실이랄까?

춘당지 풍경을 충분히 감상한 후 북쪽 끝에 위치한 대온실로 이동했는데, 들어가자마자 너무 더워서 바로 퇴장! 앞서 정전 권역을 skip 해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종묘까지 함께 묶어서 보기로 했다.

종묘와 종묘제례

종묘는 창경궁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창경궁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이동하여 함인정 너머 언덕 쪽으로 계속 걸으면 육교를 건너 종묘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 원래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공간이지만, 일제시대 때 도로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갈라 놓았다고 한다. 염병, 이래저래 일제시대의 흔적은 피할 수가 없다. 현재는 샛길이긴 하지만 언덕길을 따라 걷다 육교를 건너 종묘 정문 반대편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창경궁 탐방 후 정문으로 나와서 종묘 정문으로 진입하기엔 동선이 매우 비효율적이니, 꼭 언덕길을 통해 육교로 이동하길 추천!

종묘는 이번이 인생 첫 방문인 셈인데,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 놓은 왕실 사당으로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정전이 main이고 영녕전은 sub다. 그래서 당연히 종묘에 들어서자마자 정전으로 향했는데… 이곳에서는 실시간으로 종묘제례 생방송 진행 중이었다! 우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잠시 기대했는데…. 절대 예정에 없던 방문자가 구경할 수 있는 행사가 아니었다. 온갖 방송국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종묘제례 행사를 촬영 중이었고, 관람객들은 정해진 자리에 모두 착석한 상태. 한마디로 사전에 arrange 되지 않은 일반인이 제례 중간에 끼어드는 게 불가능했다. 사람들 이야기하는 소리만 나도 방송국 관계자님이 고개를 획 돌리며 촬영 협조 부탁한다며 조용히 해달라고 경고 날리심… ㅠㅠ

20060507 @ 한산한 종묘 영녕전

그래서 정전 관람은 입구에서 잘리고 영녕전만 구경했다. 모든 인파가 정전에 집중된 탓에 영녕전은 사람이 몇 없었다. 영녕전의 규모가 정전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좌우로 매우 긴 형태로 무려 16칸에 이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컴팩트 카메라로는 절대 한 앵글에 잡을 수가 없었다. 끝없이 뒤로 뒤로 물러 서야 하는데… 계속 가려면 영녕전 출입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종묘의 근엄함을 사진에 담을 길이 없다! 너무 아쉬워!!! 아쉬운 마음에 사진 이어붙이기를 시도해 보았으나, 이어 붙일 사진들을 좀 더 성의 있게 찍었어야 했나 보다. ㅋㅋㅋㅋ 영 보기가 그렇다. 아, 좋은 카메라 사고 싶어라~

정전에서의 종묘제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이건 사전 예약이 필요한 행사 같았다. 다음 기회를 노려보기로 하고 왔던 길 그대로 다시 육교를 건너 창경궁 남쪽 끄트머리로 진입해 창경궁 정문으로 퇴장하려고 생각했는데…

창경궁 명정전 영조 오순 어연례 재연행사

20060507 @ 행사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한복 차림의 사회자

창경궁 탐방 시작했을 때 준비 중이던 바로 그 행사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절묘한 타이밍! 곧 행사를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어 행사까지 다 보고 돌아가기로 결정!

위 사진처럼 중앙의 의자는 거의 비어 있었지만 주변의 회랑에는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어떠한 모임이든 최대한 제일 앞쪽 중앙에 앉는 것을 매우 선호하는 나! 정말 별생각 없이 중앙의 맨 앞줄에 앉았다. 사람들이 왜 다들 잘 안 보이는 회랑에 앉아 있었는지 눈치를 챘어야 했지만, 제일 앞 중앙에서 아주 자세히 행사를 보겠다는 마음에 눈치코치는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린 상태…

20060507 @ 창경궁 영조 오순 어연례 재연행사

제일 앞쪽, 그리고 행렬이 지나가는 어도(御道) 바로 옆에 앉은 덕에 사진이랑 동영상도 잘 찍고 행사 구경도 잘 했다. 영조의 50세 생신잔치를 재연한 행사였는데 꽤 볼만했고 봉 같은 걸 계속 들고 가만히 서 계신 출연자분께서 생리현상을 극한으로 참는 고통 가득한 빨간 얼굴도 아주 잘 보였다. 결국 중간에 화장실로 뛰어가셨다. 뭔가를 잘못 드신 결과물 같아서 바로 앞줄에서 보는 나도 덩달아 많이 안타까웠다는…

그리고 꽤 긴 시간 동안 재연행사 관람을 마친 후 민소매 차림이었던 내 양 팔뚝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했다. 아주 새빨갛게 잘 익어서 욱신, 화끈거리는 통증에 그날 밤 잠도 잘 못 잤고, 그 이후엔 한동안 허물이 벗겨져 보는 사람마다 팔이 왜 이러냐고 질문 세례를 받았다.

물론 뒤늦게 도착한 다른 관람객들도 회랑에 자리가 없어 나처럼 중앙 의자에 착석했지만 거의 대부분 긴팔 차림이었기에 나처럼 일광화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위 엄청 타는 나만 민소매 차림으로 관람을 해서 말이죠… 무식하면 몸이 고생하는 것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왜 다들 잘 안 보여도 굳이 회랑에 앉아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어야 했다.

창경궁 탐방을 마치며

팔뚝 화상으로 약간의 고생을 하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재연행사를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창경궁이 영/정조 시대의 배경인 것도 확실히 기억 속에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오순 어연례 재연행사를 창경궁에서 했었나 보다. 막상 재연행사를 보고 있을 때는 왜 영조 시대의 event를 재연하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내 뇌에 지식 한 가지를 더 넣을 수 있었던 창경궁 탐방이었다.

서울의 5대궁을 모두 탐방해 보자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며 이번 포스팅은 이만 마무리~~~

(2006-05-21) 내용 추가

각종 행사가 열리는 5월의 창경궁

대학교 선배가 삼성 미국지사로 이직을 했는데 미국지사 신규 채용자 대상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한국에 온다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일요일은 개인 일정이 가능하다고 하여 바로 오늘 함께 짧은 서울 도심 투어를 다녀왔다. 선배와 같은 팀에 소속된 6명이 모두 함께 나왔는데, 다행히도 백지상태가 아니라 가고 싶은 곳 목록을 정해 와서(아주 바람직함) 안내하기 편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창경궁이었기에 해당 내용을 추가해 본다.

20060521 @ 창경궁 다도 체험 행사

딱 2주 만에 재방문하는 건데 이번에도 창경궁은 행사 중이었다! 이런 우연이!!!! 싶었는데, 5월은 가정의 달로 주말마다 행사를 진행한다고… 창경궁 관람의 최적기는 5월인 듯! 영조 오순 어연례 재연행사는 주말마다 동일하게 진행되고, 추가적인 행사가 더불어 진행되는 날도 있다고 한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음식과 차(?)에 관련된 행사였는데 정확한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시음과 시식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지만 역시 외국인 친구들이라 다도 체험을 엄청 좋아했다. 6명을 동시에 통역해야 해서 정신이 좀 없긴 했으나 다른 나라의 전통문화 체험만큼 재밌는 게 없긴 하다~ 다도 체험은 1:1 체험이라 직접 통역해 줘야 했지만, 영조 오순 오연례는 다국어로 설명이 나가니 아주 편했다!

한국관광공사 여러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런 전통문화 체험은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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