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창경궁 산책
20080411 @ 진달래 핀 창경궁의 풍경

11일, 강의를 끝내고 봄맞이 창경궁 산책을 나섰다. 조선시대 4대 궁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다른 궁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달까? 창경궁은 뭐니 뭐니 해도 철쭉 가득한 5월에 가야 제맛이지만, 5월 강의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므로 시간이 날 때 가는 게 최고다. 여기저기 꽃이 조금씩 피어있어 화려하진 않아도 도심에서 조용하게 자연과 봄을 느낄 수 있는 봄나들이 장소로 궁궐만 한 장소는 없는 것 같다. 아마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인 내 취향 탓도 있겠지만, 고층 빌딩 사이에서 보는 꽃들보단 전통 건물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꽃들이 더 예쁜 것 같은 느낌이다.

강의를 끝내고 곧장 종각역에서 버스를 타고 혜화에서 내렸으나, 길도 잘 모르고 방향감각은 애초에 없는 나는 역시나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사정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다리는 아파오기 시작하고 배도 고프고 무작정 눈에 보이는 분식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으며 분식집 사장님께 창경궁 위치에 대해 물어보았다. 생각지 않게 서울대병원을 가로질러 가라고 안내해 주셨다. 가로질러 가지 않으면 뺑 돌아간다며 병원을 가로지르면 바로 나온다는 말씀에, 서울대 병원 건물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질러 가려고 했으나, 어느 방향으로 틀던지 항상 막다른 곳에 도달했다!!! 덕분에 서울대 병원 안에서 엄청 헤매고 다니다 그냥 집으로 갈 뻔했다. 묵직해진 다리를 끌고 결국 다시 병원 밖으로 나와 한 바퀴 뺑 돌았다.

창경궁 가기가 이렇게 힘들 이이야? ㅠㅠ

한나절 봄나들이에 좋은 창경궁 산책

20080411 @ 옥천교의 벚꽃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해 눈앞에 창경궁 홍화문이 보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입구에서 1,000원의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봄철 현장 학습을 나왔는지 여기저기 교복 입은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옥천교 주변의 벚꽃은 이미 끝물이지만 그래도 다른 봄꽃들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모양이다.

20080411 @ 연둣빛 새순이 궁궐의 붉은 색과 대비를 이룬다

나뭇가지엔 새로 돋아난 연둣빛 잎들이 보였다. 붉은 색감의 궁궐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감! 싱그러움이 절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궁궐이나 사찰, 이런 장소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사진 찍은 후의 만족감이 남다르거든 ㅎㅎㅎ

여인들의 거처, 경춘전과 통명전

궁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지체 높으신 여성분들의 거처가 나온다. 내 기준 창경궁 산책의 하일라이트는 대비의 침전이라는 경춘전(景春殿)과 중전의 침전이라는 통명전(通明殿) 권역이다. 이 권역은 궁궐 내에서도 꽃이 제일 많다. 여성 여성한 지역인지라 바로 옆 층계식 화단에도 꽃이 한가득! 철쭉이 한창일 무렵 이곳에 오면 이 층계식 화단은 철쭉으로 가득 찬다.

20080411 @ 층계식 화단에 가득한 봄꽃

하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이 층계식 화단 위의 산책길이다. 창경궁 내 다른 주요 동선과는 동떨어진 위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으로는 잘 올라가지 않는 곳이다. 덕분에 조용히 벤치에 앉아 멍 때리는 장소로는 과히 최고라 할 수 있다. 바람은 살랑살랑, 눈앞의 꽃잎도 살랑살랑,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경춘전과 통명전 주변의 꽃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면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다.

20080411 @ 화단 위 산책길에서 바라본 경춘전

창경궁은 사실 상당히 자주 방문하는 편인데, 층계식 화단 위는 상시 한가하다. 가끔씩 나처럼 멍 때리고 계신 근처 주민 할아버지 한두 분만 계실 뿐이다. 벤치에 한 명씩 앉아 침묵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한참 듣고 나면 번잡한 서울 라이프의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상쇄되는 느낌이다. 센스 있게 배치해 둔 벤치에서 뒹굴거리며 아이팟으로 음악도 듣고, 가끔씩 일어나서 사진도 좀 찍고, 가방에서 간식도 좀 꺼내 먹고 하다 보면 시간이 후욱 지나가는 매직!

창경궁 산책의 묘미

20080411 @ 통명전을 내려다보며 멍 때리는 맛!

창경궁은 이미 수차례 방문한 덕에 방문을 거듭할수록 새롭게 뭔가를 구경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정말 말 그대로 관람이 아닌 창경궁 산책을 하는 것이다. 입장료가 비쌌다면 반복적인 방문을 자제했겠지만, 1천 원이라는 아름다운 가격 덕분에 정말 틈이 날 때마다 창경궁 산책을 할 수 있는 점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서울에 위치한 다른 궁궐과 비교했을 때 그 규모가 작은 편이라 더더욱 산책하기 안성맞춤이다.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가이드 없이 자유 관람이 불가능하다. 정말 말 그대로 관람만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후원은 사전예약까지 필요하다 보니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 경복궁은 정말 너무너무 넓어서 돌아보다 보면 발병 나지 않던가? 그리고 덕수궁은 내 기준으로 산책을 할 만한 곳이 없다.

창경궁 최고!

인기 많은 춘당지

20080411 @ 벚꽃잎으로 가득한 춘당지

춘당지(春塘池)도 주변에 꽃나무가 많아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대신 사람들이 항상 많더라. 내가 선호하는 창경궁 산책은 한가함이 필수 조건이기에 춘당지는 항상 스치듯 지나치는 것이 다인 것 같다. 춘당지는 철쭉 시즌엔 화려함을 뽐내고, 벚꽃 시즌엔 단아함을 뽐내는 것 같다. 방문했던 날은 이미 벚꽃이 거의 진 시기여서 조금 아쉬웠다. 4월 중순인데 벚꽃이 끝물이라니…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

20080411 @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

한참 더 안쪽으로 들어가 춘당지를 지나면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라는 대온실(大溫室)이 있다. 오랜만에 이날 방문에서는 대온실도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온실이라… 더…워… 빠른 속도로 퇴장했다는…

대온실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건물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창경원 동물원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던 슬픈 역사를 지녔었는데… 오랜 복원 작업 끝에 지금은 어릴 때 보았던 시멘트 무더기도 거둬내고 하여 동물원이었을 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참 다행이다. 원래 종묘와 창경궁은 하나로 크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일제가 창경궁 일부를 밀어버리고 도로를 내버려서 지금은 이 두 곳이 완전 별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버렸다고 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멀쩡한 궁궐이 순식간에 동물원으로 둔갑이 되기도 하고, 하나였던 것이 둘로 쪼개지기도 하니 정말 한 나라의 국력이란 매우 중요하지 않나 싶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며…

너무 창경궁만 편애하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다른 궁궐도 열심히 방문해 줘야겠다. 나는 문화재를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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