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여행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라 주말을 맞아 당일치기로 합천 해인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합천 해인사를 당일치기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서울人의 mindset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난 지금 포항에 사니까^^ 합천 해인사쯤이야 하루 외출로 너끈히 가능하다!!! 어디를 갈 때마다 새삼 느끼게 되는 이 신통방통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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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품은 합천 해인사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걸 매우 즐기는 자로서 합천 해인사는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판전(藏經板殿)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접했을 때 얼마나 뿌듯했던가! Korea 하면 김정일 아니면 6.25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지내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자부심이 솟구치는 법이다. 게다가 얼마 전인가?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高麗大藏經板-諸經板)이 다수의 다른 한국의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필히 방문하겠다 생각했지만, 막상 서울에서는 거리도 워낙 멀고 교통편도 자차 없이는 이동이 불편하기에 차일 피일 미뤄왔다. 하지만 포항에 머물고 있는 바로 지금! 자차도 생긴 바로 지금! 절대적으로 가야만 하는 그런 타이밍이 도래한 것이다.
포항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계속 공사 중이던 집 앞의 큰 길이 지난달에 개통되었는데, 바로 새만금-포항 고속도로의 포항 TG와 연결되는 포항 IC다. 덕분에 대략 20~30분 정도 운전 거리가 줄었다. 9시를 조금 넘겨 출발했는데 가야산에 위치한 합천 해인사에 도착하니 아직 11시가 되기 전이다. 2시간이 안 걸리다니 너무 좋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해인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이니까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튼튼한 다리는 필수 관람 조건
근데 말입니다. 좀 너무합니다. 일주문에서 해인사 내부로 진입하기까지 계단이 어~엄~청 많은 것이다! 물론 내 기준으로 말이다. 내 비루한 체력으로 수직 이동을 매우 기피하는데 지금까지 가 본 절과는 좀 다르게 문을 통과하기 위해 계속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거다!
이 날 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던 걸까? 계단 몇 개 올라가니 매우 힘들다! 일주문을 통과하니 저 멀리 해인사의 제2문인 봉황문이 보인다. 대략 1km 정도 거리인데 역시나 오르막길에 이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물론 마마님은 매우 쌩쌩하게 올라가신다. 언제나처럼 우리집은 젊은이가 더 골골댄다. 봉황문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제3문도 앞에 계단이 수두룩하다. 하아… 기록을 위해 사진을 남겨야 하는데 체력이 너무 후달린다. 마마님은 먼저 고지에 도착해 한심한 딸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최대한 안 힘든 척, 사실은 사진을 찍느라 그러는 것처럼 줌을 최대로 당겨서 사진을 찍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해탈문에 뒤에 또 계단이 있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계단은 없었다. 만세를 부르며 관람을 시작했다.
해인도 따라 돌기
합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해인도(海印圖)도 있다. 해인도를 따라 도는 것은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진리를 깨닫는 여정이라고 한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소원지에 본인의 소원이나 참회의 내용을 적은 후 해인도를 따라 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탑돌이와 유사한 의식이 아닌가 싶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나는 그저 어림짐작을 할 뿐.
옆에서 보기엔 바닥의 돌로 구획을 나눈 선을 따라 걷는 것 같은데 양방향에서 사람이 서로 마주치면 어떻게 비켜서나 싶었다. 폭이 딱 one-way 구조니 말이다.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게 길을 잘 찾아 걸어야 할 듯한데 길을 어떻게 찾아? 딱 봐도 미로 스타일이구만! 한번 해인도로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민폐가 될 듯하여 주변을 서성거리다 해인도 지도를 발견했다.
입구 화살표를 따라 눈으로 쭈욱 이동하니 정말 신기하게도 길이 전혀 겹쳐지지 않고 출구에 다다른다! 엄청 신기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해인도가 더 잘 보일 것 같아 다시 계단을 올라 한 층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 해인도를 내려다보았다.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있는 해인사
아래의 해인도를 보러 올라온 층에는 삼층석탑과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있었다. 보통 절에는 대웅전이 있는데 해인사에는 대웅전이 없었다. (해인사에서 대웅전 찾아다닌 1인 ㅠ) 불교 지식이 부족한 인간이라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고 나서야 왜 대웅전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사찰에는 대웅전이 있고, 비로자나 부처를 모신 사찰에는 대적광전이 있다는 사실 나만 몰랐던 것인가요?
비로자나불 자세히 알아보기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전(大寂殿), 대비로전(大毘盧殿), 비로전(毘盧殿), 화엄전(華嚴殿), 대광명전(大光明殿), 대광보전(大光寶殿)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 유명한 사찰은 해인사, 금산사, 귀신사, 수타사 등이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출입 금지, 사진촬영 금지
대웅전 찾다 제일 높은 곳으로 이동했을 때 눈에 보인 건 장경판전. 대웅전은 스킵하고 본 목적인 장경판전을 구경하면 되지 싶었는데, 이건 뭡니까….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물론 세계문화유산이고 국보이고,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인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것을 보러 왔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다니요! 장경판전은 일반인은 출입 금지고 특정한 목적으로 1년에 몇 번 개방이 되는데, 그건 사실 문화재청이나 불교와 관련된 자가 아니면 뭐 역시 볼 수 없다. 그러니 결론은 “일반인이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나마 장경판전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덜 억울할 텐데, 역시 문화재 보호의 이유로 사진 촬영 절대 금지. 아 놔… 장경판전 창살 문틈으로 구차하게 들여다본 것이 전부였다.
아 놔, 해인사 오는 게 아녔어 ㅠ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오는 게 억울해서 경판 탁본 한 장 돈 주고 샀음.
대가야의 흔적, 고령 지산동 고분군
뭔가 본 것이 아무것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억울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령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멀리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고속도로 타다 잠시 고령 IC로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고령은 가야와 관련된 유적지가 꽤 있을 테니 대충 시내에 들어가서 갈색 관광지 표지판을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싶었다.
고령 IC를 나오니 역시 갈색 표지판이 똬앗! 잘 모를 땐 무조건 박물관이다 싶어 대가야박물관으로 항했다. 대가야박물관 자체도 볼 거리가 생각보다 많았고 그 옆의 대가야왕릉전시관도 매우 흥미로웠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흥미로운 와중에 소름이 끼쳤다. 아무래도 순장이 현대인에게는 매우 적응하기 어려운 장례 행위이다 보니… 설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 미친 거 아니야) 사이를 오갔다.
무덤 모양을 본 떠 만든 대가야왕릉전시관을 나와 언덕을 올라 가면 고령 지산동 고분군으로 알려진 대가야의 고분들이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자리잡은 무덤이 매우 특이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본 고분들은 대체적으로 평지에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경주나 부여의 고분들 말이다~ 산 능선에 있단 말은 지산동 고분군을 보기 위해 해인사에서 학대 당한 내 다리가 또 다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는 뜻이다. (눈물이 흐릅니다…)
해인사까지는 씩씩하셨던 마마님은 더 이상 오르막은 거부한다며 아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셨고 해인사가 너무 억울했던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지산동 고분군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다.
이날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눈에 담은 여파로 난 내 다리의 감각을 잃었다…
관람을 마치고 우륵박물관까지 둘러본 후 집으로 복귀했다. 다리가 너무 아팠지만, 한때 가야금을 너무나도 배워보고 싶었던 자였기에 가야 땅에 와서 가야금을 안 보고 갈 수는 없었다규! 맘과는 다르게 몸뚱이는 너무 피곤했던지라 사진 한창 안 찍고 눈으로만 보고 왔지만 말이다~
원래도 비루한 체력이지만, 이제 막 여름이 끝난 시점이라 내 체력이 연중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 다음 번 여행까지 체력을 최대한 보충해야겠다. 노는 것도 체력이 돼야 가능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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