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냔 붉은 돼지의 해의 행복한 한국 생활 기념
2007년 붉은 돼지의 해를 맞이한 기념으로 준비한 Porco Rosso 붉은 돼지의 한 장면

어느덧 작년이 되어버린 지난 간사이 여행기 포스팅 이후 정말 바쁜 겨울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2007년이 되어 한국 생활 1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 내가 서른이라니! 두 살 위 언니와 순식간에 동갑이 되어버린 몹시도 억울한 한국 나이. 그래도 그놈의 아홉수라는 소리는 더 이상 안 들어도 돼서 기쁘기도 하다.

마마님과 함께하는 본격적인 한국 생활

작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몇 일 남지 않은 시점에 드디어 마마님이 귀국을 하셨다. 내 예상보다 많이 늦은 귀국이었지만 그래도 2006년을 넘기지는 않았다. 귀국한 후 한국 생활에 필수적인 여러 서류 정리, 은행 계좌 개설 등 여러 업무 처리를 해야 했다. 마마님은 나보다는 한국어가 능숙하시니 당연히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매일 출근을 했고 마마님 혼자 한국 생활의 동반자인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은행 계좌 생성 등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돌아다니셨는데…

역시나 장시간 국외 체류자에게는 낯선 한국의 신문물

북에서 왔어요?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마마님께서 낮에 있었던 불쾌한 경험을 얘기해 주셨다. 처음 보는 한국의 ATM 기계라 화면을 자세히 보느라 시간이 좀 걸리니 뒤에 있던 아저씨가 마마님께 북에서 왔냐고 묻더란다. 엄청 오래 걸린 것도 아니고, 처음 써보는 한국 ATM 기계라 화면의 메뉴를 읽느라 조금 오래 걸린 걸 가지고 북에서 왔냐고 하길래 기분이 팍 상하셨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기분이 더러우셔서 폭탄 발언을 하신 것!

그래요, 나 북에서 왔어요
그래서 뭐 나한테 보태 준 거 있어요!?!

앜!!!! 빵 터진 딸내미는 바닥을 구릅니다! 계속되는 마마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북에서 온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막 하느냐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 그렇다… 외국에 오래 거주한 한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미주 한인사회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에 탈북민이 많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한국 뉴스를 안 보는 게 아님에도 해당 뉴스를 접한 기억이 없다. 예전에는 탈북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정말 어쩌다 한두 명 넘어오면 전국이 난리 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탈북이 빈번하여 뉴스에 굳이 나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탈북이란 용어도 생소하다. 언제부터 귀순이란 용어 대신 탈북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인가!

엄마, 한국에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이 엄청 많대
앞으론 화가 나도 그렇게 말하지 마

이렇게 또 그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습득하셨다. 한국어가 유창해도 한국 사회의 변화까지는 익숙치 않기에 한국 생활 적응이 그리 쉽지는 않다. 나도 ‘북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나마 말 뜻은 알아들은 마마님과는 달리 한국어가 조금 미숙한 나는 ‘북에서’라는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끝없는 동문서답의 향연을 경험한 적이 있다.

북이 뭐냐?
북이 북이지 뭐냐?
그니까 그 북이 뭔데?
북이 북쪽이지, 아이고 답답해, 한국말 못 해?
나 지금 한국말로 얘기하잖아. 북쪽이 서울 북쪽을 말하는 거임?
뭔 말이야. 한국말 못 하는 구만. 한국 사람 아니야?
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그래.
미국에서 왔는데 왜 ATM을 못해?
그러는 당신은 미국에서 영어로 된 ATM 쓸 줄 알아?
아… 외국인이구나. 탈북민인 줄…
탈북민이 뭔데?
북에서 온 사람
북에서 온 사람이 무슨 뜻이냐니까
북한 사람이라고!!!
뭐어????????? 한국에 북한 사람이 있어?

대충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문서답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이후로도 수차례 경험한 북에서 왔냐는 질문은 ‘미국에서 왔어요’로 빠르게 상황 종료~ 마마님께도 미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질문을 멈춘다는 한국 생활 1년차의 노하우를 전수해 드렸다. ㅠㅠ

적응 안되는 한국식 부동산 거래

원룸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귀국 후 한 달 정도 밖에 시간 여유가 없어서 원룸 계약을 좀 연장할까 싶었지만, 평생 원룸에 살아 보신 적 없는 마마님께는 거주 공간이 너무나 불편하셨기에 빠르게 아파트로 이사! 그렇다, 급했다. 귀국하니 곧 크리스마스였고, 그 이후엔 연말연시였다. 1월 초부터 집을 알아보기 시작해 1월 13일에 이사를 했으니, 2주 만에 집을 구한 것이다.

급하게 구한 집이라 정말 문제가 너무 많았다. 집이 더러워도 너무 더러운 것이었다. 엄마 또래 아주머니와 그 어머님 두 분이 사시던 곳이라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이 두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더러운 종자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더러운 공간은 처음 보았다. 급하게 구하느라 도배장판을 할 시간도 없어 그냥 이사를 들어왔는데, 짐을 전혀 풀 수가 없었다.

우리 짐이 더러움으로 오염될까봐…

급하게 이사 당일 도배장판을 하고 주말 내내 미친 듯이 청소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내가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고 예전엔 청소년이라 직접 이사를 진행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한국과 미국의 부동산 계약 관행이 너무도 달랐다. 난 미국식 부동산 계약만 익숙한 인간이라 이해 안 가는 것이 너무 많았다. 원룸은 계약일이 만료되었는데도 월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신규 세입자가 들어와야 그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을 이전 세입자에게 내어 주는 개 같은 시스템이었다. 이게 이상하지 않은가 보다. 난 너무 이상한데. 내가 준 계약금을 그냥 돌려주면 되는 걸 왜 남이 주는 계약금을 기다렸다가 받으라는 것인가? 그럼 내가 준 계약금은 어디에 삶아 먹은 건데?

계약 만료일은 왜 존재하는 거야?

신규 세입자가 있건 없건 계약 만료일에 계약이 종료되니 모든 금액적인 요소가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입자에게 새로운 월세 보증금을 받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집주인과 신규 세입자 둘만의 일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내 계약일이 끝나도 새로운 세입자가 안 오면 나는 돈을 못 받고, 돈을 못 받았으니 나는 방을 못 빼는 것이더라?

완전 미친 거 아냐?

한국식 부동산 계약은 형식상의 절차이고, 돈을 주고받는 일은 관행으로 이루어져서 법적 보호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집주인이 돈을 안 내어주면 끝인 것이고,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쓰레기 같은 시스템이다. 나는 대체 한국에서 왜 이런 시스템으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개해도 이렇게 미개할 수가? 이제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가까워졌다며? 절대 아닌데? 이런 미개한 관행으로 인해 분명 언젠가는 큰 사달이 나고 말 것이다.

어차피 원룸 보증금이야 목돈은 아니기에 아파트 이사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정말 매우 불쾌한 한국식 부동산 거래였다. 그리고 새로 이사를 들어간 곳도 나중에 이사 나올 때, 집 주인이 새로운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집을 못 뺀다는 미친 논리도 알게 되었다. 정말 미쳐 돌아가는 한국식 부동산 거래… 한국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시스템일 것 같다.

1주일 간의 병자 생활

주말 내내 세상 더러운 묶은 때를 청소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상황에, 이삿날은 중국집 음식이라는 공식에 충실하여 배달시켜 먹은 짜장면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두 모녀 모두 심각한 병자가 되었다. 식중독 증상에 이사 대청소로 인한 몸살이 겹쳤던 것 같다. 회사를 3일씩이나 결근했다. 문제는 병원에 가야 회복이 되는데 모녀가 쌍으로 앓아누워 빠르게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먹거나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그나마 나보다 체력이 좋은 마마님께서 세쨋날 겨우겨우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와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미국식 생활에 너무 익숙한 우리는 응급실은 죽을 위험이 있을 때나 가는 곳이었다.

응급실 가면 개인회생 신청해야 하는 미국의 의료비~

둘 다 미국에서 여행 가방만 들고 귀국했고, 풀옵션 원룸에 살았던지라 세간살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이사를 마치고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을 구매했어야 했는데, 너무 아파서 병원도 못 가는 상황에 가전 쇼핑이 웬 말! 덕분에 앓아누웠던 3일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러다 죽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 가족이 단둘인 우리. 물론 친척들도 있지만 전부 서울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시는 상태라 비상 상황에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절대 둘이 동시에 아프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격심한 식중독, 장염 및 몸살 증세로 며칠 만에 해골 같은 몰골이 된 것을 보니 42~3 kg 대로 유지했던 몸무게가 쑥 빠져 다시 3x kg대로 수직 하강한 모양이다. 3일 결근에 몹시 분기탱천한 회사에서 기어서라도 출근을 하라고 지랄을 했기 때문에 4일째에 정말 거의 기어서 회사에 갔는데… 내 꼬락서니를 보더니 그냥 바로 퇴근해서 쭉 쉬고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더라. 그럴 거면 힘들게 왜 나오라고 한 거야? 내 말을 못 믿은 거냐? 핑계를 댄다고 생각한 거야? 지하철 타고 오는데 몇 번을 기절하는 줄 알았구만… 결국 1주일을 결근하고서야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병가를 인정해 주지 않는 빡 센 한국 생활이다…

활기찬 한국 생활을 기대하며

2007년을 아프느라 힘들게 시작했지만, 그래도 원룸이 아니라 아파트라 정상적인 생활 환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자취생처럼 생활하던 입장에서 원룸의 생활 환경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마마님은 원룸의 미니 냉장고에서 벗어나신 것에 매우 만족하셨다. 역시 제대로 된 살림을 하는 입장에서 미니 냉장고는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되겠지?

1월은 이사하고 병치례 하느라 시간이 훌렁 지나가버렸는데, 2월은 1월의 결근 여파로 거의 매일 불철주야 야근의 향연과 설 연휴로 또 다시 훌렁 지나간 느낌이다. 지난주 설 연휴에 모인 일가친척 분들께 얼굴을 비추며 마마님의 한국 생활 복귀 신고식까지 모두 마무리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일 처리를 마무리한 느낌이다.

그 사이 겨울이 몽땅 지나가버려 아쉬움 한 바가지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라도 힘을 내 봐야지! 작년 한국 생활에서 이미 경험한 무서운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열심히 돌아다닐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에 바로 떠난다! 마마님의 신규 여권 갱신 기념으로 떠나는 일본 나고야 여행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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