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에 2박 3일로 나고야 근교 여행을 다녀왔다. 늘 벼르고 별러 여행을 떠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 나고야 근교 여행은 참 즉흥적으로 진행되었다. 마침 마마님께서 여권 갱신으로 신규 재발급을 받은 상태였기에 상큼한 새 여권에 첫 도장을 찍자 하는 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아시아나 항공기를 예약했다. 사실 여행의 이유가 항상 대단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떠나고 보는 것이다. 연차는 고이 모아 두었다 연말에 돈으로 받으라고 강요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불우한 인간인 나는 공휴일을 활용해 길게 여행을 갈 수 없었다. 정말 있지도 않은 오만가지 집안 사정을 만들어 가며 목요일이었던 삼일절에 대체 근무를 하고 금/토/일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하아, 법으로 정해진 연차를 사용하지 말고 돈으로 받으라고 겁박하는 데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이 사람들이 내게 반복적으로 말하는 진정한 한국인의 정서인지 의문만 쌓여가고 있다.

봄날의 나고야 근교 여행

나고야는 그 주변 소도시에 굵직한 명소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여행 기간을 길게 잡으면 갈 곳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었다. 일본 3대 명천(名泉)이라는 게로 온천(下呂温泉)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인 시라카와고(白川郷) 합장촌도 있고, 작은 교토라는 다카야마시(高山市)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그것도 오가는 날을 제외하면 단 하루밖에 없는 비루한 일정이었다. 이럴 때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최선이다. 나고야가 나름 큰 도시지만, 우리 모녀는 도시 관광에는 영 관심이 생기지 않는 체질이다. 나고야는 관문 도시니까 도착한 날 저녁 시간에 잠깐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로 하고, 둘째 셋째 날은 나고야 근교 여행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공항에서 나고야 시내로 메이테츠센(名鉄線, Meitetsu Line)이 가장 간편하다고 하니, 나고야 근교 여행에 집중하는 둘째 날과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하는 셋째 날 일정 모두 메이테츠센을 기준으로 여행 동선을 잡았다. (메이테츠센 노선도 보기)

오후 비행기로는 부족한 시간 – 아침 비행기를 타세요!

연차를 내지 못해 고작 2박 3일간의 짧은 여행에 들어가는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한 푼이라도 저렴한 점심시간대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편을 이용하여 추부국제공항(中部国際空港)에 도착하니 여행 첫날은 그냥 날리는 것 같아 마음이 바빴다. 캐리어 찾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아까워 각자 조그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입국 심사 후 캐리어 픽업 대기시간 없이 초스피드로 메이테츠센 쾌속 특급(Limited Express)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메이테츠 나고야역까지는 850엔이었고 대략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고야 근교 여행의 시작
20070302 @ 문 닫은 나고야 성 주변 산책은 나름 재미있었다.

문 닫은 나고야 성

시간 절약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나고야 역 근처에 예약해 두었던 호텔에 체크인까지 마치고 나니 이미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어둑해지는 풍경에 배낭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중요한 물건들만 챙겨서 급하게 나고야 성으로 향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ㅜㅜ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데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호텔에서 미리 나고야 성 관람 시간을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시간에 쫓겨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확인을 못했다. 4시 반에 문을 닫으니 호텔에 체크인했던 시간에 나고야 성에 도착했더라도 30분 만에 둘러보기엔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공항에서 바로 나고야 성을 먼저 방문한 뒤 체크인을 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역시 이래서 돈 더 주고 대한항공 오전 비행기를 탔어야 했지요…

나고야 시내 저녁 산책

20070302 @ 3월 2일 저녁의 날씨 치고는 너무 포근했던 16도

사실 첫날 나고야 시내 일정은 그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아서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목적은 나고야 근교 여행이니까~~ 나고야 성은 실패했지만 그냥 시내 구경이라도 하자 싶어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나고야 성이 있는 시야쿠쇼역(市役所駅)에서 나고야의 주요 랜드마크가 몰려있는 사카에역(栄駅)은 딱 한 정류장 거리다. 외투가 필요 없는 날씨였기에 히사야오도리(久屋大通)를 따라 걸었다. 한기가 가득했던 서울 날씨에 비해 너무나 포근한 날씨라 우리가 외국에 왔음을 실감했다. 그냥 설렁설렁 걷는 길도 즐겁게 만드는 날씨! 우선 미세먼지가 없어서 참 맘에 들었다. 도로를 따라 걷다 육교 너머로 보이던 현재 온도를 알려주는 전광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곧 어두워지기 시작할 시간에 섭씨 16도란다. 역시 일본이구나!

오아시스 21 & 텔레비전 탑

나고야 텔레비전 탑이 가까워질수록 한가했던 도로는 점점 더 사람으로 북적였다. 나고야 다운타운 한복판에 자리 잡은 텔레비전 탑을 지나쳐 ⌈오아시스 21⌋로 들어가 대충 저녁을 때우고 나니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오아시스 21⌋의 상징이라는 ‘물의 우주선, 水の宇宙船’을 둘러보는데 인증 사진을 찍고 싶어도 2000년대 초반의 똑딱이 카메라로는 절대 감당이 안 되는 깜깜한 저녁시간이라 사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으로 물이 일렁일렁 거리는 모습이 참 신기했는데 아쉽다. 그 유명하다는 텔레비전 탑은 솔직히 시각적으로 특별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 최초의 집약 전파탑이라 일본의 여러 도시에 있는 랜드마크 타워 중에서 유일하게 유형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여행 다녀와서 지도를 읽어보다 발견한 사실입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20070302 @ 오아시스 21 물의 우주선과 텔레비전 탑의 야경

야경을 감상하며 이리저리 걷다 보니 간략하기 그지없던 코스지만 다리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나고야 근교 여행의 첫 목적지인 이누야마성(犬山城)메이지무라(明治村)의 걷기 대장정 코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일찍 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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