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때는 여의도 벚꽃 축제 같은 걸 했던 기억이 없다. 벚꽃 구경 하면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 정도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여의도 벚꽃 축제가 봄맞이 축제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정확히 언제부터 생긴 축제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2005년부터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 겨우 4회차지만, 아마도 정식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도 벚꽃 명소로 소문이 나서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주변에서 여의도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며 칭찬하는 소리를 많이 들은지라 한 번쯤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결국 날을 잡았다. 마침 내일이 선거일로 휴강이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할 부담도 없으니, 간만에 느긋하게 늦은 저녁 시간까지 벚꽃 구경을 실컷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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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이 많은 여의도 벚꽃 축제
4월 8일 5:30pm, 그렇게 여의나루역에서 나의 첫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일 것 같은) 여의도 벚꽃 축제 구경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좋았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길 양쪽으로 벚꽃 가로수가 마치 구름 터널처럼 펼쳐져 있었다. 갑작스레 초여름처럼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만개한 벚꽃들이 저마다 예쁨을 맘껏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덧 귀국한지도 2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한국에서 이렇다 할 꽃구경을 못 해봤기에 더더욱 신이 났다. 사실 미국엔 벚꽃이 그리 많지 않아 워싱턴 DC에나 가야 벚꽃 같은 벚꽃을 볼 수 있다. 캐나다에서도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벚나무가 없었는지 벚꽃을 본 기억이 없다. 정말 내 기준으로 벚꽃은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꽃이라 요즘엔 봄꽃 중에 벚꽃이 제일 예뻐 보인다. 새까만 나무줄기와 새하얀 꽃잎들이 서로 대비가 돼서 그런지 볼수록 화사하고 예쁘다.
우와~이야~ 엄청 이쁘다! 원래부터 여의도에 벚나무가 이렇게 많았었나?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벚꽃 터널을 찍으려다 꽃 촬영에 흠뻑 빠진 어떤 청년이 내 사진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모자이크 해 주다 이 청년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DSLR인 듯한 카메라로 찍었으니 예쁜 벚꽃 사진을 건질 수 있었겠다. 살짝 부럽다~ 2002년산 내 똑딱이 디지털카메라는 이제 수명이 거의 다 되어가는지 너무나 아름다운 이 꽃들을 제대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을 들여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찍어야 그나마 포커스가 어느 정도 맞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데, 오늘처럼 사람들을 피해 재빨리 찍은 사진들은 대부분 포커스가 나가 있다.
여유로운 벚꽃 구경은 어렵다
한참을 벚꽃으로 만발한 거리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지났고, 사람들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사람의 수만큼 나도 지쳐갔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 보면 편두통의 공격이 시작된다. 아직 인구 밀집도가 높은 한국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나 보다. 동행한 마마님 역시 두통이 밀려온다고 하시기에 인파를 피해 한강 공원으로 내려와 그나마 사람이 없는 강가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가 질 무렵이라 한강공원에서 바라보는 63빌딩에 석양이 비치고 있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봄을 즐기고 있었다. 점점 더 어두워지고 저녁식사 시간도 다가오기에 저녁을 먹고 집에 가려는데 살짝 아쉬운 맘이 들었다. 왠지 벚꽃보다는 사람을 더 많이 본 기분이었다. 벚꽃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엔 반대편인 국회의사당 쪽(마포대교와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 방면)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쪽으로 안 와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서강대교 남단을 지나야 여의도 벚꽃 축제의 핵심이라는 윤중로가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멋모르고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마포대교 반대쪽으로만 열심히 걸어 다녔으니 모르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딱이다. 저질 체력 보유자들은 축제장 방문 전 동선을 잘 계획해야 다리품을 조금이라도 아끼면서 여의도 벚꽃 축제를 알차게 즐길 수 있다.
여의나루역 –> 마포대교 –> 서강대교 남단 –> 윤중로 국회의사당
윤중로의 팝콘같이 만개한 벚꽃들이 어느새 화려한 야간조명으로 인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래된 내 카메라가 햇빛 없이 제대로 된 벚꽃 사진을 남겨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아주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이 비록 흐릿해도 내 머릿속에 기억은 선명하니까 이렇게 예쁜 풍경을 찍지 않을 수 없다.
구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내일 출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당일 포스팅을 하고 있다. 다리도 뻐근하고 힘들지만, 말로만 듣던 여의도 벚꽃은 충분한 구경거리를 선사해 주었으므로 만족스러운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다만 사람이 너무 과하게 많았기에 본인처럼 붐비는 곳을 기피하는 사람이라면 저녁 야경은 과감히 포기하고 평일 오전을 공략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평일 오전에 일 안 하고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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