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상골증후군으로 인한 발 통증에서 벗어나고자 부주상골 제거 수술을 받은 지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어제 깁스를 풀고 이제부터 열심히 재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통증 없는 발로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 재활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전에 수술에 대한 기록을 먼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이 글의 목차
부주상골증후군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남들은 없는, 원래는 없어야 하는 뼈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으로는 주상골(navicular)만 있어야 하는데… 주상골에서 분리된 부수적인 뼈(부주상골, accessory navicular bone)가 추가로 생겨 족부에 여러 가지 문제(라고 쓰고 통증이라고 읽는)를 유발시키는 것을 부주상골증후군(accessory navicular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부주상골은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어 불규칙하게 발현되는 것이며, 지구인의 2~14% 정도가 부주상골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주상골이 있다고 100% 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인의 부주상골이 어떻게 생겨먹었느냐에 따라 평생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평생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어린이 시절부터 통증에 시달려온 나는 불행하게도 후자다. 그 시절 우리나라에는 족부 전문의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아예 없었다고 해두자. 그러니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방문해도 의사 놈이 학교 가기 싫으니 핑계 대는 거 아니냐는 소리나 하고 말이지…
부주상골의 유형
지구인의 2~14%가 가지고 있는 부주상골은 희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부주상골은 우성 유전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므로 당연히 일가친척 중 부주상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나처럼 통증을 호소하는 이가 없었으니, 나만 이상한 혹은 유별난 인간 취급을…
부주상골은 다음의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Type 1: 주상골과 부주상골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유형
- Type 2: 주상골과 부주상골이 반쯤 붙어있어 덜렁거리는 유형
- Type 3: 주상골과 부주상골이 한 몸으로 붙어 있는 유형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 2번 유형의 부주상골을 가진 자는 통증이 없는 게 이상한 것이다. 1, 3번 유형은 평생 아무 문제 없이 지낼 확률이 높다. 물론 어쩌다 발에 부상을 입게 될 때 주상골과 부주상골의 관계성(완전히 분리되어 있거나 붙어 있었던 상태)이 틀어지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부주상골 제거 수술 후기
평생 발 통증에 시달려 왔기에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11월 중순 히로시마 여행 중에 계단에서 발을 살짝 헛디뎠는데, 그 이후로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심하게 아파도 푹 쉬면 통증이 줄어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했는데, 이번에 넘어지고 나서는 도통 통증이 줄지 않았다. 결국 17일에 여행에서 돌아와 11월 28일 부주상골증후군 치료로 유명한 족부클리닉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은 후 12월 1일에 부주상골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다.
히로시마 여행 후 족부 전문 병원을 찾아보느라 내 발 통증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내 발 통증이 부주상골증후군 때문이라는 것을 내 나이 마흔이 거의 다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저 뼈가 튀어나온 부분이 아프고 발을 땅에 디디기 힘들어 족저근막염이 아닌가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부주상골증후군이었다니…
더 빨리 내 발 통증이 단순 족저근막염이 아닌 걸 알았다면 서울에 살 때 수술을 받았을 텐데 말이다. 귀촌을 해서 서울을 떠났는데 병원을 서울로 다니려니 쉽지 않다. 특히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니 이동이 너무 어려워! 무슨 이유인지 나는 꼭 서울을 떠나 있을 때 수술을 받게 되더라?
이것은 팔자인가?
나 두 발 다 부주상골 있는 여자야!
Y 병원에 도착해 양쪽 발 모두 엑스레이를 찍은 후 담당 의사선생님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쌤이 날 보자마자 양쪽 발에 다 부주상골이 있는데 오른발은 너무 심해 보인다며 대화를 시작하셨다. 왼발은 앞서 설명한 부주상골 유형의 1번에 해당되는 바둑돌 만한 크기의 부주상골이 있는데 현재 통증이 없다면 괜찮지만, 통증 발생 시 바로 수술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왼발은 상대적으로 멀쩡해서 부주상골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양발에 부주상골을 다 가진 자라늬!!!!!!
오른발은 엑스레이로 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수술 날짜를 잡자고 말씀하셨다.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게 매우 아팠을 텐데 정확히 언제부터 아팠냐 물어보시는데 초딩 때부터 아팠다는 사실을 말하려니… 음… 몹시 민망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은 한국의 의료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오랜 시간 해외에서 지내서 병원에 다니기 쉽지 않았다. 난 절대 병을 키우는 스타일이 아니라규 ㅜ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수술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지였는데, 내 오른발의 엑스레이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라 수술을 강력하게 권장하신단다.
오, 예스! 수술 당첨~
1박 2일 수술 입원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은 수술 일이 12월 1일. 수술 당일 이른 아침에 입원해 오후에 수술을 받고 다음 날 오후에 퇴원하는 일정이다. 아침 7시 반에 병원에 도착하려니 정말 꼭두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정체가 심해져서 제때 도착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한 세월, 병실로 올라가기 전 필요한 검사를 받는 데 또 한 세월. 병실을 배정받아 환자복으로 환복하고 짐 정리를 하고 나니 9시가 넘었다. 이번에도 역시 딸램 병수발을 들러 오신 마마님과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이번엔 무탈하게 잘 마무리 되기를 기원했다.
슬슬 수술 시간이 다가오니 부주상골 제거 전 모습을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에 양쪽 발 사진을 한 장 찍어 두었다. 움푹 튀어나온 우측 부주상골을 이젠 더 이상 안 봐도 된다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나도 드디어 30년 묵은 부주상골증후군에서 벗어나는구나!
부주상골 제거 수술 직후 증상 및 주의사항 (Day 1)
저체온증
역시나 이번에도 마마님은 수술 직후 보호자 콜을 받고 수술 대기실로 불려 가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딸램의 옆에서 저체온증에 대해 의료진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했단다. 나는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아 기억이 없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을 핫팩으로 감고 겹겹의 담요를 덮고 있었다. 이것은 (다행히도) 수술 경험이 많지 않아 몰랐던 사실인데, 저체온증은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물론 멀쩡한 사람도 있고 다 개인차가 있으나, 나는 안 그런 사람에 포함되는… 하아…
병원에는 핫팩이나 담요가 항상 충분치 않다. 여러 환자들이 나눠 써야 하니까… 이때도 병원에 있는 여분 핫팩을 몽땅 내게 감아 놓은 상태였다. 나 말고 다른 누가 같은 증상이 있었다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핫팩과 담요는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술 입원 시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개인 보온 용품을 챙기는 걸 강력 추천!
진통제 부작용
수술 전 의례적으로 환자에게 진통제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한다. 적은 확률로 일부 환자에게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매번 그 일부에 해당하는지… 어마어마한 복통에 돌아버리는 줄. 야밤에 당직 간호사 님 콜 해서 처치를 받고서야 겨우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화장실 접근성
원래도 불면증이 매우 심한 편이라, 낯선 곳에서 잠을 잘 못 잔다. 그래서 되도록 병원 입원 시 상급 병실을 쓰려고 하는 편인데 빈자리가 없었다. 하아… 다인실만 자리가 있다고 하여 단 하룻밤이니까… 단 하룻밤이니까!!! 그냥 다인실 방으로 배정을 받았던 것인데!!!!!!
후 / 회 / 막 / 심
밤새 진통제 부작용으로 복통에 시달리고 불면으로 잠을 못 자는데 수액은 계속 들어가고 있으니 수차례의 화장실 방문은 필수불가결한 문제였다. 그런데 다인실에 화장실이 없고 복도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난 다리 수술을 했고… 휠체어를 타려면 보호자가 밀어줘야 하는데 휠체어 바퀴가 너무 뻑뻑하여 잘 안 굴러갔다. 마마님 체력도 그리 우수하지 않았기에 말씀은 안 하셔도 휠체어 미는 게 무리인 게 훤히 보였다. 결국 휠체어로 이동하는 건 포기하고 목발을 짚으며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다 기력 소진으로 복도에서 여러 차례의 기절할 뻔… 다리 수술한 환자는 소변 줄 찰 일이 없으니 화장실과 병실 침대가 얼마나 가까운지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절대적으로 상급 병실 추천한다. 하룻밤이니 그냥 돈 내자. 나는 의료실비로 차액만 내면 되는데 병실이 없으니 대략 난감 ㅠㅠ
필요 물품
목발과 냉찜용 아이스팩(최소 2개). 병원에서 구입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이 준비해 가는 것보다 당연히 비싸다. 우리는 그냥 병원에서 샀다. 아이스팩은 1개만 샀는데, 최소 2개는 준비를 해야 한다. 수술 후부터 다음 날 통깁스를 하기 전까지 붓기 관리를 위해 냉찜질을 해야 한다. 냉기가 사라지면 다른 아이스팩으로 계속 교체해가며 냉찜질을 해야 하는데 아이스팩 여분이 충분치 않으면 공백이 생기고, 냉찜 공백 시기에 수술 부위의 통증이 올라온다. 아프기 싫다면 열심히 충분한 아이스팩을 준비할 것! 우리는 멋모르고 1개만 샀다가 같은 병실 환자분들께서 남는 걸 다 빌려주셔서 3개를 번갈아가며 잘 사용했다.
수술 익일 퇴원 (Day 2)
전쟁 같은 밤이 지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복통도 사라지고 수액도 다 맞아 화장실 들락날락할 필요도 없어지니 정말 살 것 같더라. 담당 쌤과의 진료를 마친 후 처방받은 약을 챙겨 퇴원을 했다. 밤새 내 뒤치다꺼리 하느라 피로에 절은 마마님께서 다시 운전대를 잡으셔야 했다. 고속도로를 씽씽 달려 집에 도착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하아, 정말 병원 입원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힘들고 지치게 한다. 입원이 딱 하루라 천만 다행이었다. 몇 일이었으면 세상 하직할 뻔…
(퇴원 후 첫 외래 진료까지의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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